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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신경염
    마시마로 2013/05/07 1,548
      설을 보내고 며칠 안돼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눈 앞에 까만 동전같은 것이 생겼다고 한달 전부터 이유없는 두통에 시달리신다고는 했지만 원래 지병이 고혈압이 있고 날씨가 풀리는 이 시기가 제일 풍이 오기 쉽다고 하니까 작은 풍끼려니 생각하고 다니시던 병원에 가보시라고만 했다. 명절 전에 고혈압 약을 바꿨다는데 혈압약이 안맞을 경우 전에도 그러셨고 두통이 너무 심해서 CT를 찍어보니 풍이 살짝 지나가셨다고 다행이라고만 했단다 전조 현상은 두통만은 아니었는데 설 전에 왼쪽 눈에 까만 점이 하나 생겼는데 두통이 고혈압 증상인 줄 알고 내가 침 맞으시라고 해서 침을 맞으니 사라졌길래 얘기도 안하고 계셨는데 설 저녁에부터 이번에는 오른쪽 눈에 검은 점이 생기더니 다음날 저녁 동전만 해져서야 내게 전화를 하셨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라고 나는 놀라서 왜 인제 얘기하냐고 화만 내다가 내일 당장 큰 병원 가시라고 했다 서울은 내 눈 상태로는 당장 달려갈 수도 없고 그런다고 같이 눈 나쁜 사람끼리 병원에서 헤맬 수도 없으면서 화만 낸 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럴 수 없는 내 심정도 까맣게 되기는 마찬가지였죠 다음날 2차 병원을 거쳐 제일 가까운 김안과에 가셨더군요 CT도 다시 찍고 검사도 다시하고 하더니 시신경염이라는 판명 오후 늦게 입원 스테로이드 주사만 거푸 링겔을 통해서 받으셨어요 두통은 변함이 없이 머리를 깰 듯 오신다지 주사 부작용으로 온 옴은 퉁퉁 붓다 못해 배에 복수도 차신다고 하지 검은 동전은 더 커져서 오른쪽 눈의 가장자리로 빛만 들어오지 안보이신다지 의사는 치료를 하고 있는데 시력이 돌아올지 안돌아올지 돌아오면 어느 정도 회복될지 경과를 지켜봐야 안다며 시력이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니 더는 답답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아는 사람에 부탁해서 다음날 오후에 병원에 가 보았습니다 창가 침대에 안자 계신 어머니의 부은 모습은 눈이 부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오른쪽 눈이 사시가 되어 저를 반기는 웃음 가슴에서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죠 내가 가끔 눈 나쁜 티를 내는 행동을 할 때마다 남동생이 평소엔 잘하다가도 가끔 불뚝 화를 냅니다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나더군요 물론 슬프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가슴이 쩌릿쩌릿하고 똑바로 엄마를 쳐다 볼 수 없었어요 알피로 인해 내가 가슴 아픈 것은 어찌 견딘다 해도 사시가 된 모자가 함께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상상되는 모습이 모자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쏟아져 온 몸에 박히는 것 같았어요 어디가 아프네 어디가 붓네 하소연을 하면서도 아들이 온 게 좋아서 마냥 웃음을 거두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혹시나 내 속마음을 들킬까 봐 나도 가능한 입을 활짝 벌리고 농담을 섞어 가면서 별 큰병도 아닌 것처럼 할려고 하기 했습니다 다음날 저녁께가 되니 다행히 검은 것이 작아져서 눈 가장자리로는 물체를 보실 수 있다고 하셔서 서서히 고쳐지는구나 했습니다 그날 밤 열시가 넘어 막내 이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옛날 외가집 근처에 새색시가 시집 온지 얼마 안돼 어머니와 똑같은 증상으로 서울 병원에 갔다가 못고치고 왔는데 배에 복수가 차서 남산만해지더니 금방 죽었다며 어머니가 죽을 지도 모르는데 형제들이 신경도 안쓰고 문병도 안오고 그러면 되냐며 당장 내일이라도 김안과 같은 데 말고 대학병원에 모시고 가라고 뭐하고 있냐며 혼을 내셨다 막내이모와 엄마는 자매끼리 투덕투덕 잘 싸우시고 금방 화해하시고 하시더니 이번 싸움에서는 쉽게 화해하시지 않고 엄마가 아프다는데도 와 보시질 않으면서도 걱정은 되셨는지 아님 조카들 하는 꼴이 화가 나셨는지 화를 내시지는 않지만 어른스런 잔소리를 한참을 제게 하시고는 끊었습니다 이모는 와보지 않고는 병이 호전되고 있슴을 모르시고 김안과도 대학병원인 것도 모르시고 자식들이 찾아 뵙지는 않아도 평택에서 하루 종일 틈만나면 전화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신 채 하시는 말씀이 서운하지만 과거의 새색시 기억을 말씀하시는 데는 정말 이번에 돌아가시는 거면 어떡하지 하는 한 걱정하시는 바람에 변명으로 들릴 것 같아 네, 네, 네, 만하고 끊었다 그 날은 쉽게 잘을 잘 수 없었다 김안과에서의 완치에 대한 불분명한 설명이 왠지 꺼림칙하고 정말 돌아가실 것처럼 아프다고만 하시니 불안해서 어찌할 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일주일의 입원으로 검은 물체는 사라지고 다만 어둡고 흐릿하게만 보이신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 후 한달 동안 집에서도 스테로이드 약을 드시고 통원하셨는데 링겔로 맞는 것보다는 일정량이 투여되지 않기에 아침에 약드시고는 오후 세시까지는 두통과 붓는 통에 앓기만 하시니까 눈이 이대로 나빠도 좋으니 약 좀 안먹고 싶다는 말씀까지 하시고 그럴 때마다 눈 나빠서 운전 못하면 아들보러 못 오시네 아들을 낳았으면 다냐 반찬은 꼬박꼬박 챙겨 주어야지 뭐하는 거냐 하면서 아이 다루듯 얼르고 혼내며 한달의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다행이 시력이 원래로 돌아와 기존에 쓰시던 안경을 그대로 쓰실 수 있게 나왔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알피가 아닌 정안인도 한번에 실명까지 쉽게 갈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눈 나빠지는 나를 보며 가족이 느끼는 속상함도 그로인한 다양한 태도가 나올 수 있음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날씨가 참 좋아요 리라꽃, 라일락꽃, 수수꽃다리 가 한창 피어 꽃내음을 뿜고 있어요 모두 같은 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시죠 대여섯 살 쯤에 우리집 앞마당에는 배나무와 함께 라일락 꽃이 있었는데요 군대 갓 제대했던 이종 사촌형이 라일락 향기는 거피향 같다고 해서 저는 그 때부터 수수꽃다리 꽃내음이 나면 커피가 먹고 싶답니다 밖에 나가시다가 꽃내음이 나면 커피향 같은지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