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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피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께 ..
    가디안 2012/12/17 1,093
      안녕하세요. 가디안입니다. 오늘은 그냥 제 얘기나 좀 끄적거리려고 왔습니다. 심심해서 제 닉네임을 게시판에 검색해보니 온통 공지글 뿐이더군요. 우선 제 나이는 스물 일곱입니다. 해가 바뀌면 스물 여덟이 되고 내일 모레면 서른이 됩니다. 좀 이상한 계산법이죠? 이해해주세요. 언제까지나 18살 고등학생일꺼라 생각했었는데 벌써 서른이 됩니다. 저도 많이 늙었네요. ^^; 참고로 신체나이는 여든입니다. 저는 RP란걸 9살 때 알았습니다. 알피 판정 받고 , 그 사실을 깨닫고 산지 20년이 됬네요. 20년을 RP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늘 한결같이 "우리 부모님" 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솔직히 저는 알피로 20년을 살면서 눈 걱정을 별로 해본적이 없어요. 성격이 워낙에 긍정적인 편이고, 아무 생각없이 낙천적인 것도 있고 중학교 이후로는 남들이 나에 대해 알기 전에 먼저 떠들고 다녔거든요. 내가 눈이 이러이러하니 실수해도 좀 눈감아주고 도와달라 제가 인복이 좋아 좋은 분들만 만나며 산건지 눈으로 인해 피해를 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에요. 제 나이에 비해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이고, 일상 생활이 쉽지 않아 맹학교 들어와서 재활교육을 받았고 2월달에 졸업합니다. ^^ 밤은 물론이요 낮에도 사람이 좀 많다 싶으면 가방에서 흰지팡이부터 꺼내 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별 걱정은 안하고 살지요. 그런데 저는 위에서도 썼다시피 "우리 부모님"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네요. 아홉살 때, 판정받던 그날. 의사가 면전에 대놓고 "넌 앞으로 안보이게 될꺼야" 하던 그때에도 저는 아 그래요? 안보이는구나 하고 불고기버거와 딸기 쉐이크를 맛나게 먹고 있었습니다. 엄마 손 잡고 전철타러 가는 길에 햄버거 다먹고, 엄마 얼굴을 슬쩍 봤는데 울고 계셨습니다. 눈이 빨개져 가지고 볼을 따라 뚝뚝 떨어지더군요. 왜 우는지 몰랐습니다. 좀 더 큰 다음에 알았죠. 아무것도 몰랐는데도 그 모습이 뇌리에 박혀버려서 20년이 다되가는 지금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네요. 그 이후로 중고등학교시절 폭풍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님때문에 스트레스 참 많이 받았습니다. 내용은 별거 아니였어요. 나를 지나치게 걱정하신다는 것과 지나친 배려였습니다. RP라 시야가 좁은 내가 할 수 있는 가동범위가 적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어디 갈떄 갈수 있겠냐? 마중나갈까? 데려다줄게. 누구 있냐 로 시작해서.. 이거 하면 눈은 괜찮냐? 눈이 그래서 할 수 있겠냐? 등등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싫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그런 것까지 다 해주려고해?? 가끔은 RP라는걸 조금은 잊고 살고 싶었는데, 부모님 걱정 덕에 RP임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어요-_-; 뭘 해도 RP와 눈을 연관 시키면서 걱정을 하셨죠. 그 걱정하시는 모습이 너무 싫었습니다. RP에 대해서 대학병원에서도 잘 모르던 시절이라 의사들은 "유전입니다" 라는 말 밖에 못하던 시절이였죠. 자는 아들 깰까 조심스럽게 머릿맡에 오셔서, 당신들 덕에 내가 이렇게 됬다고 .. 미안하다며 우시던 그 모습이 너무 싫었고, 상처가 됬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울게 하는 제 자신이 싫었어요. 나는 괜찮은데 .. 당사자인 내가 정말 괜찮다는데 -_-; 저는 정말로 괜찮았거든요?? 그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그러지말라고 소리도 질러보고 별의 별 짓을 다 했었더죠. 철없던 시절이였습니다. 이후에는 눈에 대해서는 별 말도 안하고, 눈 뿐만 아니라 어디가 아파도 아프다 소리 안하고 .. 그러고 살았던 것 같네요. 물론 부모님 앞에서만요. 동네친구 학교친구 일가친척 내가 접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선 작은병 꾀병 다 떠들고 댕겼으면서.. 스무살이 되고, 술을 배웠습니다. 옴팡지게 먹었죠 당시엔.. 그렇게 배운 술로 아부지랑 가끔씩 호프 한잔 하면서 쌓여왔던 것들도 조금씩 얘기하곤 합니다. 그러지 말라고 , 아무리 자식 생각해서 그렇게 하셔도 그건 당사자한테 도움은 커녕 그 모습이 상처만 된다고. 그럼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습니다. 니가 자식 키워봐라 .. ㅋㅋㅋㅋ 그렇게 시행착오와 상처를 남기고 이제는 좀 아물어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걱정이야 늘 하시겠죠. 하지만 티를 안내려고 노력하십니다. 그만큼 저는 또 마음의 부담이 덜 되니, 이런 얘기도 하고 저런 얘기도 하고 오히려 속편하게,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곧 치료책이 나오니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끝난면 그건 그냥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RP를 겪어보지 못한, 이 심적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입발린 소리일 뿐이죠. 이건 뭐 위로도 아니고 .. -_-; 걱정 많이 되실겁니다. 세상 어느 부모 맘이 안그러겠습니까? 내 자식이 그런 병을 가지고 있고, 힘들게 살아갈텐데 .. 슬프고, 안타깝고, 걱정도 되고 불안하고 하죠. 하지만 정말 자식을 생각하시고, 그 맘을 생각하신다면 조금 힘드시더라도 그 표현을 아이에겐 하지 말아주세요. 지나친 배려와 걱정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범하게 대해주시고 정말 자식이 도움을 필요로 할때 내 판단이 아니라 스스로 도움을 청할 때 그 때 도와주세요. RP라고 세상사는거 힘들지 않아요. 아 물론 힘들죠-_-;; 아무 질환 없이 말짱히 사는 사람들 보다는요. 하지만 그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고, 본인이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무게입니다. 그 무게를 덜어주려는 마음이 부모님들의 마음이지만 , 그 마음은 오히려 그 무게에 추를 더 달아주는 격입니다. 걱정과 질책, 대신 해주겠다는 마음 대신 격려와 응원. 혼자 설 수 있는 의지를 심어주세요. RP라서 못하는 일보다 RP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꿈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부모님들께서 먼저 깨달으셔야 합니다. 세상이 보이지 않는건 불편이지만, 꿈이 보이지 않는건 불행입니다. 아, 그리고 거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제가 속편히 사는 이유 중 하나는 긍정적인 이유도 있지만 희망을 넘어 치료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치료법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협회를 통해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치료연구사업의 길을 쭉 살펴보시고 , 그 길이 어떻게 뻗어갈지 한번 대략적으로 그려보세요. 조금은 더 마음이 편해지실겁니다. 빗줄기에 바위 패이듯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그 길이 점점 넓혀질겁니다. 그냥 제 생각을 이리저리 끄적끄적 하다보니 글이 두서가 없어졌네요. 제 글이 정답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저하고 같을 수는 없겠죠. 다만 자식 된 입장에서, 이미 한번 겪어본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한번 생각해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 하루도 축복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