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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저시력rp)입니다. 버스 번호 같은 큰 글씨는 볼 수 있지만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나 전화번호 등은 돋보기나 배율 높은 확대경을 사용해도 읽을수 없는 저시력입니다. 이런 제가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겪고, 느낀 불편에 대해 알리고 싶어 글을 씁니다.
요즘은 핸드폰 사용하기가 참 편해졌습니다. 문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TTS라는 기능이 개발되어 문자 메시지와 통화 기록도 조회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음성으로 알려주어 전화 시간 알리미 서비스(116)을 이용하느라 요금을 낭비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또 음성메모 기능은 메모의 어려움을 덜어 주어 TTS 기능과 함께 생업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2006년에 구입한 핸드폰이 자꾸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핸드폰을 바꾸고 싶어졌습니다. 다수의 핸드폰 매장을 방문해 TTS 기능이 되는 핸드폰이 있는지를 문의했허니 구형 모델에만 있고 신형 모델 중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조사들에 직접 문의했는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삼성전자에서는 1-2년 전에 나온 소수 모델들 이후에 생산된 핸드폰에는 더이상 TTS 기능을 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삼성전자 쪽에서 권하는 TTS 기능 핸드폰은 디자인도 너무 투박했고, 제가 즐겨 듣는 지상파 DMB 기능도 없었으며, 구형인데도 신형보다 비쌌습니다. TTS 기능 하나 때문에 비싸게 구형 핸드폰을 사야 할까요? 제가 시각장애인이어서 제 값을 주고도 원하는 물건도 못 산다니, 이것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삼성전자에 문의했더니 이번에는 SK텔레콤 제품 중에 TTS 기능이 되는 핸드폰이 나왔으니 그것을 쓰라고 했습니다. 이 기능 하나 보고 오랫동안 쓰던 통신사까지 옮겨야 한다니 그것 역시도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만들거면 다른 통신사 제품도 함께 만들어 시각장애인의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삼성전자 말고 다른 제조사(LG전자)에도 똑같은 문의를 했습니다. 이곳 역시 1-2년 전에 나온 소수 모델들 외에는 더 이상 TTS 기능이 있는 핸드폰은 생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LG전자에는 시각장애인 전용 핸드폰이 있었습니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와 LG전자가 공동으로 한 해에 2000대씩 만들어 나누어주는 이 핸드폰은 평소 일반 매장에서는 구매할 수 없습니다.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첫쩨, 수요는 많은데 한 해에 2000대 밖에 공급되지 않으니 당해에 시각장애인 전용 핸드폰을 받지 못하면 핸드폰 수해자로 선정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또 수해자가 사용하다 분실이라도 할라치면 중복 선정은 2순위라는 내부 규정 때문에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둘쩨, 내가 결정할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시각장애인 전용 핸드폰을 얻기 위해 무조건 통신사를 옮겨야 하고, 내 기호와는 상관없이 지정된 기능과 디자인의 핸드폰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지상파 DMB나 고화소 카메라 등을 사용하고 싶지만 시각장애인 전용 핸드폰에 그런 기능이 없어도 참고 그냥 써야 합니다.
시각장애인이 선택의 폭을 넓히려면 시각장애인도 비장에인과 똑같은 핸드폰을 사용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문자 메시지나 통화기록 정도는 아무 불편 없이 확인할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TTS기능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기술적, 제정적) 때문에 모든 핸드폰에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기능들이 들어갈 수 없다면 제조사마다 한 해에 생산되는 핸드폰 중 일정 비율에는 반드시 TTS 기능이 들어가도록 하면 시각장애인들의 선택의 폭이 힉기적으로 넓어질 뿐만 아니라 문자 해독에 어려움이 있는 노인층들이나 어린이들도 그 해택을 함께 누릴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핸드폰이 외국으로 수출되면 다른 나라의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들에게도 널리 인정받으리라 생각합니다. 약자까지도 배려하는 따뜻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그 자체가 좋은 기업 이미지로 연결돼 마케팅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통신사도 TTS 기능이 없어진 데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통신사든 시각장애인이 처음 가입할 때 복지할인을 받기 위해 복지카드를 제시하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자사에 가입한 시각장애인이 어느 정도인지 알수 있습니다. 통신사와 제조사는 서로 협력해 고객의 성향과 기호, 그들에게 필요한 기능 등을 파악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조사들은 다양한 고객 정보를 근거로 한 통신사의 요청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소수라도 엄연한 자사의 고객인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기업의 의무일텐데 통신사는 이런 의무는 등한시한 체, 제품 홍보와 서비스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이윤 추구에만 열중하지 말고 시각장애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요구를 취합해 제조사에 전달하는 기업의 사회적 의무에도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노력이 TTS 기능 같은 장애인 편의기능이 들어간 다양한 제품 개발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번에는 시각장애인 단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시각장애인 단체들의 끈질긴 요구가 있었기에 시각장애인 전용 핸드폰이 나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참 대단한 성과입니다.
그런데 방법을 좀 바꿔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사회적 약자이기에 국가와 사회로부터 충분한 배려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만의 것만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각장애인 역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똑같은 시각장애인이라도 개인이 처한 상황과 개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도 시각장애 때문에 불편한 것 외에는 물건, 여가 생활 같은 다양한 삶의 문제를 각 개인의 생각과 개성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핸드폰도 있어야하지만 일반 핸드폰에 TTS 같은 기능을 넣어 시각장애인들도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똑같은 핸드폰을 선택할수 있게도 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 모두 해택을 누릴수 있는 폭넓은 배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요구할수 있어야 당당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국가와 기업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 역시 사회적 약자에게 눈을 돌리고 귀를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배려는 일시적이어서도 안 되고 생각날 때마다 물고기 하나 던져주는 식이어서도 안 됩니다. 국가는 큰 틀에서 취약 계층의 부족한 부분을 체워주면서도 그들의 행동과 권리가 제약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또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분리되게 하기보다는 서로 어울려 살수 있는 복지정책을 펴야 합니다. 모든 핸드폰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핸드폰에 TTS 기능 같은 시각장애인 배려 기능이 들어가도록 기업들을 독려하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업 역시 당장의 이익과 수요에만 급급하지 말고 사회적 약자가 사회 속에 깊숙히 들어오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배려가 곧 글로벌경쟁력임을 염두에 두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제품에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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