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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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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따신 거 진심으로 축하하며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쌓은 金벽돌
한국일보 | 입력 2009.09.12 02:33 | 누가 봤을까? 30대 여성, 대구
기능올림픽 벽돌쌓기金 이태진군 가르친 구만호 교사… 1급 시각장애 불구 헌신적 지도
11일 오후 5시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렸던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화려한 플래시 세례와 박수 속에서 입국장 문을 나왔다.
↑ 용산공고 구만호(오른쪽) 교사가 1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조적(벽돌쌓기) 직종에서 금메달을 따고 입국한 제자 이태진군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고 있다. 인천=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조적(組積 ㆍ벽돌쌓기) 직종에서 금메달을 딴 이태진(18)선수도 카트를 밀고 나오자, 용산공고 구만호(47) 교사가 인파를 뚫고 가장 먼저 이 선수에게 다가가 반갑게 껴안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구 교사는 제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짧게 안부를 물었다. 표현이 서툰 스승과 제자는 서로 말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구 교사는 이 선수가 올해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헌신적으로 그를 지도했다. 구 교사는 13년 전부터 망막세포가 퇴행하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1급 시각장애인. 벽돌을 쌓아 1mm의 오차만 생겨도 큰 감점을 받는 조적 분야를 지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용산공고 건축디자인과 교사로 2004년부터 조적 분야를 맡게 된 구 교사는 지난해 이 선수의 전국대회 출전을 계기로 본격적인 호흡을 맞췄다. 비록 눈 앞이 흐릿하지만 구 교사는 컴퓨터로 설계도면을 확대해서 확인하거나 시력보조장비를 통해 이 선수의 작업과정을 꼼꼼히 점검했다.
구 교사는 재단, 벽돌마름질, 미장, 줄눈 작업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이 선수와 함께 반복했다. 전국대회 금메달 수상자들을 찾아 다니며 노하우를 배우고 좋은 공구를 찾아 개조하는 일도 구 교사의 몫이었다. 지난해 가을 이 선수는 보란 듯이 국내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데 이어 국제기능올림픽에 나갈 대표 선수로도 선발됐다.
기능올림픽 준비 과정에서도 구 교사의 뒷바라지는 계속됐다. 이 선수와 함께 캘거리까지 함께 간 구 교사는 대회 전날에 주최측이 제공하는 재료가 국내에서 연습한 재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에 맞는 공구를 구하느라 캘거리 시내를 3시간이나 돌아야 했다.
대회장에서도 속이 타는 건 구 교사였다. 관객석에서 이 선수의 작업 모습을 조금이라고 보고 싶은 마음에 망원경을 꺼내 들었는데, 망원경을 촬영 장비로 오해한 심판에 의해 퇴장 명령을 받아 관객석을 떠나야 했다. 경기는 2~4일 사흘간 치러졌다.
이 선수의 금메달 획득이 확정된 것은 5일 밤 11시께. 다른 선수들과 함께 한인식당에서 심사결과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구 교사와 이 선수는 낭보가 전해지자 서로 부둥켜 안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
선수단에 앞서 9일 귀국한 구 교사는 이날 제자의 자랑스러운 개선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마중 나왔다. 이 선수는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저는 없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구 교사는 앞으로 시각장애인이 다니는 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지도할 계획이다. "100여명의 정상적인 선생님들 속에서도 큰 불편 없이 생활했습니다. 저처럼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사회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불편 없이 살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가르치겠습니다."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