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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society 게재 칼럼
비장애인의 자유권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에 우선하는가?
시각장애인만이 안마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의료법 61조 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아니면 위헌 판정을 받을 지가 장애계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지난 7월 2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대한안마사협회를 비롯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30여 단체 회원 1천 500여명이 모여 '시각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위한 합헌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그 동안 시각장애인들은 안마를 통해 가족을 부양했고, 자녀를 교육시켰으며, 사회의 일원으로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었다. 의료법 61조 조항은 사회 구조상 소수자인 시각장애인을 보호하고 진정한 인간 평등의 가치 실현을 위한 나름의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재판관들은 생존권과 같은 사회권은 국가재정이 뒷받침되어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유권에 비해서 생존권 보장과 같은 사회권 보장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판결에서 헌재 재판관들이 자유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졌지만,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이라는 사회권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06년의 판결은 헌법적인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비시각장애인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에 우선순위를 둬서 합헌적인 제한이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제한이냐, 아니면 과잉 제한이냐, 이걸 두고 논의한 뒤 결국 과잉 제한이라고 판단을 했던 것이다. 당시 판결문에도 나오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안마업을 주는 것은 비시각장애인들의 안마업 진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헌법재판소는 판결했다. 그러면서 숫자 논리를 내세웠는데, 전국에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6천 명 있는데 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비시각장애인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그 후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한강에 투신을 하면서까지 저항을 하였는데, 이는 안마업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얼마나 절박하고 소중한 직업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이와 같이 시각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판결은 다음 세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 시각장애인의 절박한 생존권인 사회권이 비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명시한 자유권보다 우선한다고 봐야 하는 게 세계적인 판례 추세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안마사라는 직업 보장을 통한 절박한 생존권의 보장이냐, 아니면 비시각장애인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 보장이냐, 이 두 기본권의 충돌이다. 당연히 필자는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이 헌법 34조 5항에 근거하고 있고 헌법이 부여한 권리이기 때문에, 두 헌법상의 기본권을 놓고 봤을 때 시각장애인들의 안마업을 통한 생계유지가 훨씬 더 절박하고 처절하며 중요한 권리라고 판단한다.
둘째, 2006년 판결 때는 헌법상 명시된 권리가 무시되었다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이 헌법 34조 5항에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 위헌 결정문 속에도 관련 내용이 없다. 이는 비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만 보고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은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에 눈 감은 판결인 것이다.
셋째, 장애인 같은 사회적인 약자에게 국가가 유보직종을 법률로 지정해준 뒤 나중에 위헌 판결을 내려서 유보직종을 박탈한 판결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우리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다른 외국도 하지 않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유보직종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다수 집단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안마업이 아니면 이 땅의 시각장애인들은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시각장애인이야말로 원천적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봉쇄당한 소수자들이다. 안마업이 없다면 생계유지조차 불가능한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는 그 자체로 생존이요 생명이다. 이번 판결에서 진정한 법 정신의 승리, 정의가 실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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