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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한계를 착각하지 마라
    죠나단 2008/03/20 807
      내 운신의 폭을 더 좁히고, 주변에 장애물을 더 많이 두를수록, 내 자유는 훨씬 커지고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착각 하나 - 불가피한 세계와의 충돌 ***** 삶에는 한계가 있다. 이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나도 이제 사실 이문장의 글씨를 돗수 높은 안경을 써야 겨우 볼 수 있다. 더구나 알피로 인하여 망막이 망가져가는 지금, 어디에도 나아질 희망조차 없어 언젠가는 이 안경마저 소용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야말로 바깥 세상의 창문이 영원히 닫히는 때가 오고있다. 이처럼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가정생활은 엉망이 되고 어쩌면 경제적인 문제로 파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동안 중년으로 꿈꾸어 오던 많은 일들이 흩어져갔다. 내 인생이 여기서 실패로 끝나고 그 좌절감으로 뒤돌아보면, 내 자아상 조차 한없이 초라해진다. 알피 게시판에는 간간히 보였던 친구들 조차 실명으로 하나씩 사라져간다. 그러나 우리 중 다수는 늘 이런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듯 가장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한계는 불편하다 못해 고통스럽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부정하려 든다. ***** 착각 둘 - 인간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 우주가 서울시 전체에 해당한다면, 은하계의 크기는 서울 운동장 만한 규모이다. 태양계는 서울 운동장 구석에 놓인 테니스 볼 크기이며, 지구는 테니스 볼 주위를 10 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맴도는 하루사이 벌레와도 같다. (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1쎈티 직경의 구슬 크기의 태양에서 12km 떨어진 1미리 겨자씨 만한 지구가 돌고있다.- 우리가 과학 시간에 설명하는 태양계와는 엄청난 인식의 차이가 있다.) 인간은 지구 위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 인간 중에서 우리는 눈이 멀어가는 불량품에 속한다. 가끔은 무엇에 부딪쳤는지 모른채, 그저 툴툴 털고 일어나 아무 일 없었던 듯 계속 가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리는 절뚝거리고 부상은 생각보다 심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아프다. 집에 가는 길도 모른채, 차츰 버림받은 아이처럼 마음조차 불안하다. 5년 전 내가 이 병이 알았을 때, 인간의 능력으로 알피가 조만간 치료될 것이라 믿었다. (아마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눈이 멀어 가는지, 더 이상 따져 묻기 조차 싫어졌다. 인간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렸을 때, 나는 인간다워짐을 깨닫는다. 불가피한 무지에서 오는 조급함도 없어졌고, 그만큼 나는 자유롭게 되었다. ****** 착각 셋 - 그래도 희망은 있다.****** 서울 운동장 구석에 놓인 테니스 볼 위를 하루살이가 날고 있다. 벌레만도 못한 크기의 인간이 우주의 비밀을 풀었다. 뉴턴의 만유인력은 오늘날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까지 헤쳐 나갔지만, 또 다른 무지의 벽에 봉착했다. 그가 평생동안 추구해온 통일장 이론도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오늘날 하루살이 벌레의 몸이 수 십억 개의 세포로 만들어져 있고, 그 세포 속에 존재하는 수 십만 개의 염기서열은 며칠이면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다. 인간의 뇌세포에는 수천 억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각각의 신경세포 하나에는 1만개의 뉴런이 있다. 하나의 커다란 우주가 우리 머리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또 다른 우주를 발견한 것도 인간이다. 그래서 미국의 IBM 회사도 우주 탐험에 사용할 첨단 컴퓨터를 인간의 세포 연구에 투입키로 하였다. 알피 질환 역시 최근 5년 동안, 50% 이상의 발병 유전자가 밝혀졌으며, 일부 치료 단백질은 DNA 염기 서열 뿐만 아니라, 단백질 구조까지 밝혀지고 있다. 알피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연구 역시 마지막 장벽으로 보였던 신경 세포의 연결이 작년도에 와서야 성공을 거둔바 있다. ****** 착각 넷 - 지식의 한계가 주는 선물 ****** 인간은 반드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언젠가 세상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신의 영역일 뿐이다. 인간은 결코 인간 이외의 존재가 될 수 없다. 이것을 인정할 때만이 서글픈 상황 속에서도 소중한 위안을 발견하게 된다. 알피의 치료 역시 어쩌면 우리 지식의 한계 너머에서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장벽이 나타나서, 우리의 꿈을 본래의 위치로 되돌릴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알피라는 질환을 치료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단순한 답변에 벗어나야 할 때이다. 인간의 능력에 겸손할 줄 안다면 이러한 답을 조급하게 원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의 한계를 넓혀야 한다. 치료의 꿈은 그 한계 안에서가 아니면 언젠가는 밖으로 부터 오는 선물일 뿐이다. 기다리기가 지겹고 고통스럽다 해서, 안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자고 선동하지 마라.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치료의 선물을 은혜로서 받을 자격이 없다. 우리가 지식의 한계를 넓히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마치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았을 때 처럼, 진정으로 그때가 오길 참을 성 있게 기다리는 알피 환우가 되자. 여러분 힘 내세요. 죠나단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