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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 아버지 생각에(6)
    요셉 2007/01/07 591
      울 아버지 생각에(6) 울 아버지를 생각 하면은 기분이 좋다. 내가 중 3 때이다. 울 누나가 고 3 이었고 우리는 둘 다 상급학교로 진학을 했어야 했다. 아버지는 둘 다 상급학교로 보내시기에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보통의 가정은 누나가 대학교를 가지 않고 아들인 나를 고등학교로 보내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울 아버지의 생각은 다르셨다. 누나는 대학에 보내시기로 결정하셨고 나는 정상적인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하셨다. 두가지 이유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결정하셨다. 1. 내가 남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남자는 공부할 기회에 공부를 하지 않아도 언젠가 다시 공부할 기회가 온다는 것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여자인 누나는 한 번 공부할 기회에 공부를 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면 다시 그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공부할 시기와 기회에 공부를 하도록 하자는 아버지의 완강한 뜻이었다. 2. 아들인 요셉이가 아직 공부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였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때 공부를 못했다. 나의 선생님은 내게 태화종고를 가라고 추천하여 주셨다. 아버지는 내가 그 고등학교를 가기를 원치 않으셨다. 아버지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나 보다. 지금 고등학교에 보내면 시시콜콜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시면서 아버지는 내가 공부의 쓴 맛을 보고 정말로 공부의 필요성과 공부를 해야 하는 인식성을 가지도록 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보내지 않으셨다. 이러한 아버지의 의도는 파악하지 못하고 집 안의 친지들은 아들은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고 딸을 대학에 보내신다고 야단들이셨다. 아버지의 의도와 계획 속에 우리는 삶을 이어갔고 정말 아버지의 의도대로 되었다. 나는 그 때 아버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방황을 했다. 암울한 시간들을 보냈다. 내 나이 17살 때 나는 부산에 있는 방직회사를 다녔는데 여 사원이 700명이었고 남자는 10여명에 불과한 회사를 다니면서 학구열을 가지기 시작했다. 회사를 마치면 나는 곧장 야학으로 달려 갔다. 부산대 학생들이 공장에 다니는 공돌이와 공순이를 모아 야학을 했는데 나는 야학을 다니면서 학구열을 불태웠다. 그것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아버지의 의도가 오늘을 있게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은 아버지는 앞선 생각을 하신 선각자이셨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요셉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