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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 아버지 생각에(3)
    요셉 2007/01/04 705
      울 아버지 생각에(3)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추억되는 것이 있다. 아버지는 앞을 못 보셨다. 아버지의 나이 50세 정도에 망막색소변성증으로 두 눈을 실명하셨다. 소뇌위축증과 함께 합병증으로 몸이 안 좋았다. 그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안 보였다면 적응을 할 수 있을 텐데 50 평생을 보시다가 못 보게 되니깐 그 아픔은 우리 가족은 이해할 수 없었다. 실명하시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큰 병원이나 기도원, 그리고 신유의 능력이 있으신 분들을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와 내게는 실망만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때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실명하신 것에 대해 아버지는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으시냐고 하니 아버지는 마음을 많이 안정시키시고 말씀하시기를 “못 보니 집에서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그러셨다. 아버지는 늘 간증거리가 있었다. 교회에서 하시는 간증은 도맡아 하셨다. 못 보심으로 글을 항상 내가 적어 주었다. 간증문을 적어 드리는 것이 그 때 나는 싫었다. 간증하는 것도 나는 창피하게 생각했다. 아버지는 갈수록 몸이 안 좋아 지셨다. 몸이 안 좋아 지셔도 간증거리는 더 많이 생기셨다. 교회에서 아버지의 간증은 금요기도회와 남선교회 철야기도회에서 보통 하셨다. 아버지의 몸이 안 좋으셔서 어느날부터는 집에서 간증문을 써 가지고 아버지 대신 내가 교회에서 간증문은 읽었다. 아버지의 간증은 특징이 있었다. 첫번째는 짧았다는 것이다. 짧아도 할 말은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설교를 하면은 짧게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짧게하는 이유가 소뇌위축증때문이었다. 내가 설교를 짧게 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과 그리고 내가 어릴적부터 교회 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가장 싫었던 것은 설교를 길게 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설교에서 중복되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마디로 할 수 있는 것을 나는 설교를 하면서 내가 청중이었을 때를 항상 기억한다. 두번째 아버지는 항상 움직일 때마다 생생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아있는 간증이 나오셨다. 얼마나 간증이 많으셨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간증을 하기 위하여 간증거리를 만드시지 않으셨다. 간증거리가 생기시면 아버지는 요셉아 부르셨다. 불러서 그 간증을 기록하기를 원하셨다. 나는 그 때 아버지의 말씀을 기록하는 것을 내 삶에 가장 짜증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아버지는 짜증내는 나를 달래가며 하셨고, 나중에는 나의 짜증이 극에 달하자 교회 사무실의 울 누나 친구인 혜정 누나를 부르셨다. 아버지는 시도 지으셨다. 혜정누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서 항상 우리 집에 와서는 대필을 해 주셨다. 아버지의 간증집과 시집이 우리가 집을 지으면서 소실했다. 아버지 이 불효자식이 지금에야 뉘우치고 아버지께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혜정누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내가 목회를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간증문은 대필하고 시를 대필한 것이 오늘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참 감사하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하는 요셉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