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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듣고 노래할 수 있으니 '난 행운아'
    터미네이터 2006/07/08 675
      “듣고 노래할 수 있으니 난 행운아” 시각장애인 이현아 양 “소리공부 귀로 했죠” 제22회 동아국악콩쿠르 학생부 정가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한 이현아 양. 빛도 구별하지 못하는 중증 시각장애인이지만 점자 악보도 없이 귀에 의지해 정가를 익혔다. 안철민 기자 “청∼조∼야 오도∼고야∼/반가∼웁다∼임의∼소식/약수∼삼∼천∼리를….” 느릿느릿한 장단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질러 내는 높은 소리. 눈을 감고 여창(女唱) 지름시조 ‘청조야 오도고야’를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맑고 청아했다. 그러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도 함께 느껴지는 듯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 모인 청중들의 눈가에 작은 이슬방울이 맺혔다.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제22회 동아국악콩쿠르 학생부 정가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한 이현아(17·서울맹학교 3학년) 양. 빛도 구별하지 못하는 중증 시각장애인이 국악콩쿠르 대회에서 입상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러나 이 양은 수상을 하고도 엄마를 붙들고 밤새워 엉엉 울었다. 금상을 받아야 대학 입학 때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아국악콩쿠르에서 꼭 1등해서 대학 국악과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정말 노래가 하고 싶거든요….” 엄마 배 속에 든 지 8개월 만에 800g의 미숙아로 태어난 이 양은 인큐베이터에서 2번의 수술을 받던 중 안구가 파괴돼 시각장애인이 됐다. 어릴 적부터 밖에 잘 나가 놀지 못했던 이 양은 할머니와 함께 라디오를 들으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7세 때 피아노 교사가 “목소리가 좋으니 소리를 배워 보라”고 권유해 국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박종순(경기시조합창단 단장) 씨로부터 시조창과 12가사, 여창가곡 등 정가(正歌) 수업을 받았다. http://mplay.donga.com/videofile/2006/culture/sjg_lha.js'> href="http://www.donga.com/docs/news/dongailbo/kmusic/2006/index.php"> size=2 color=green>▶동아국악콩쿠르 동영상·DVD 유료서비스 이 양은 중고등학교 진학 때 국악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번번이 ‘신체적 결격사유’가 이유가 돼 좌절했다고 말했다. 당시 지원했던 학교의 입학 요강에는 ‘청각 이상자, 사지 또는 십지 이상자, 척추 만곡자, 본교 선발 규정에 따라 수학이 불가능하다고 판정된 자’ 등의 합격자 배제 요건이 있었다는 것. 이 양은 결국 국악담당 교사도, 국악반도 없는 서울맹학교에 진학했지만 소리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고1 때부터 1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와 함께 김병오(국립국악원 정악단) 씨의 집으로 찾아가 공부했다. 버스로 왕복하는 데만 3시간, 레슨 2시간 등 한 번에 총 5시간이 걸리지만 소리를 공부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이 양의 스승인 김병오 씨는 “현아는 15∼16분짜리 가사 한 곡을 녹음해 가면 1주일 뒤에 모든 가사와 장단, 꺾임 부분까지 완벽하게 습득해 온다”며 “비장애 학생들이 시조나 가사, 가곡 한 곡을 떼려면 보통 2, 3개월이 걸리는 데 비해 현아의 학습 속도와 집중력은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이 양은 2004년 전국정가경연대회에서 국악예술고 학생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고, 올해는 국내 최고(最古)의 전통을 자랑하는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은상(2등)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대학 국악과에 입학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 양은 “만일 중고등학교 때처럼 장애를 이유로 국악과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대학에 갈 생각이 없다”며 “가정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안마를 배워 안마사로 일하면서 집안을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김희숙(48) 씨는 “건설 현장에서 일해 온 아버지가 최근 몸을 다쳐 쉬고 있어 현아가 대학에 못 가면 안마사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며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을 못하고 안마사로 살아야 한다면 평생 얼마나 큰 한이 되겠느냐”라며 눈물을 훔쳤다. 서양음악에는 점자 악보가 있지만, 국악의 경우 제대로 된 점자 악보도 없다. 그래서 서양음악계에서는 이탈리아의 시각장애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등 장애인들도 활발히 활동하지만 국악계는 아직도 높은 벽이 존재한다. 이 양은 “눈이 보이진 않지만 귀가 들려 내가 노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국악무대에도 서고, 장애인들에게 국악을 가르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이 이뤄지는 날을 보고 싶다. ▶동아국악콩쿠르 동영상·DVD 유료서비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