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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은 현재 경기대 국문과 교수로서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심사위원과 여러 문인 단체에 관련한 활동을 하며, '고요아침'이란 출판사도 운영하고 계시는 분이랍니다. 그리고 지난 3-4년 동안 바쁜 스케줄 가운데에서도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실시하는 시각장애인들의 문예창작 교실에 매월 1회씩 무료강의를 하고 계시지요. 그간 수강생들 중에는 각종 시창작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성과도 여러번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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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 지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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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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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산이 서로 허리 잇대어
깊고 험한 산일지라도
길과 만난다
말하자면 산 사이로 난 길은
모든 산의 두통과 비밀한 고뇌가 잠시 그친 곳
길은 가시덤불과 적자생존과
영역 확장의 반연을 멈추게 하여
편안하게, 산을 쉬게 하고 싶었던 거다
산수유 꽃 지는 산동마을
병아리떼 오종종한 그 환한 산길을
눈빛 줄 데 없이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오래된 길의 그늘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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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길에 연하여
끊기지 않은 길이라 할지라도
강과 만난다
말하자면 들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은
온갖 길의 복통과 꽃 지는 설움이 잠시 그친 곳
강은 아픈 바퀴와 양은냄비의 삶과
질주의 광기를 멈추게 하여
그윽하게, 길을 잠기게 하고 싶었던 거다
은모래 부서지는 하동포구
모래 한 줌 던지면 뛰어오르는 꺽지와 누치
그들과 은빛 얘기를 나누며 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이제 갓 생겨난 햇살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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