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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이 테레사수녀가 죽고난후에 그녀를 성녀로 칭한다.
가장 화려한 짧은생을 마감한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거의 같은 시기에 두 여인은 이세상과 이별한것으로 알고 있다.
과천의 엄마들과 다이애나와 테레사수녀의 두 여인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면서 어떤 엄마들은 다이애나처럼 살기를 원하였고 나는 테레사수녀처럼 살기를 원하였었다.
과천 관악산에 구세군 양로원이 하나 있다.
바로 그 아래 동네의 관할을 나는 5년간 통장의 일을 맡아 할때였을때에, 다이애나가 그 구세군 양로원을 방문한적이 있었다.
나는 동원 되어 새벽부터 과천 주변의 쓰레기들을 주으러 다녔었다. 자연보호운동 이라는 플랭카드를 들고서.
널부러진 쓰레기를 주우면서 나는 욕지거리를 많이 했었다.
"누구는 이 추운날씨에 새벽부터 나와서 이런 담배 꽁초를 줍느라고 고생이고, 이 관악산에 좋은 공기 마시겠다고 지 건강위하여 등산오는 인간들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담배연기를 뿜어대고도 모자라서 아무데나 이렇게 꽁초를 버려서 우리를 이렇게 고생 시키고 지랄들이야" 라고....
23명의 과천의 통장 아줌마들중에서 내가 한참 막내였었는데 (나 혼자 유일한 30대)
나의 궁시렁거리는 말에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 쳐주시던 사오녀 통장아줌마 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성녀가 될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만 사랑하는 수녀들은 결혼을 않하였기때문에 가난한자,불쌍한자를 돌아보고 봉사 할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지만
한때는 하나님보다도 내 남편을 더 사랑하여 결혼을 하였던 죄를 지은 나는 이웃을 사랑하려고 해도 이웃을 사랑할 자유가 없는 결혼생활이라는 굴레안에 같히게 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결코 테레사 수녀처럼 성녀가 될수 없었던것 같다.
내 남편에게는 오직 섬기고 사랑해야 하고 희생하고 베풀어야 할 대상이 자기의 어머니와 자식들 뿐이었던고로 나와 많이 부딪치며 살아왔었다.
지난 수요일날 (9월 28일) 엔 나는 결국 감히 시어머니께 쿠데타를 일으키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결과 우리집은 며칠간 암흑시간들이었었다.
그 놈의 부엌 마귀가 우리 가정을 뒤흔들어 놓았던것이다.
수요일 낮에 남편이 집에 밥먹으러 들어올 시간에 맞추어 나는 명태국을 끓였다.
계란을 하나만 풀라고 하시던 시어머니의 명령을 거역하고 나는 달걀을 3알이나 풀었고, 생선을 후라이팬에 올려놓고서 햇살님이 쓰신글을 읽고 난후 우리집 강아지와의 이별 이야기를 쓰고 있던것을 마저 쓰고 끝내려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때에,
어머니께서 내게 오셔서 "생선을 불에 올려 놓고 와서 이렇게 딴짖하는 놈이 어디 있니?" 하며 야단을 치시기에 놀라서 가보니 벌써 생선을 접시에 잘 담아 놓고 오신후였다.
난 다시 컴 앞에 돌아와 끝마무리를 하고 있을때에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은 웃으며 " 남편님 오셨는데 컴퓨터하고 있냐?" 라고 하기에 얼른 일어나 국을 뜨러 갔다.
국을 뜨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헐크로 변하여 와서는 내게 호통을 치는 것이다.
어머니의 고자질 때문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나는 시부모님 앞이라고 더이상 할말도 못하고 참고만 살고 싶지는 않아졌다.
옛 습관이 발동을 한 내 남편은 내게 손찌검을 하려 했다.
미국은 폭행을 하면 무조건 감옥행인것을 잘 아는 사람이면서도.
많이 배우고 선하고 완전에 가깝게 좋은 내 남편은 내가 자기 어머니의 심기를 아주 조금만 언짢게 해드려도 무조건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헐크로 변하여 내게 너무도 많은 상처를 주고는 했었던것이다.
" 내가 이집에서 더이상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상 나는 독립하여 혼자 살겠어. 나는 이집의 식모가 아니야. "
라는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자 아수라장이 된 그 뒷이야기의 결론은 아직도 내 방엔 내 옷짐이 싸다가 만채로 널부러져 있고.....
시어머니께서 2일동안 나와 말도 않하시더만 짐을 챙겨 어제 한국으로 떠나셨다.
한국의 하늘이 열렸던날이라는 개천절날인 오늘 도착 잘 하셨다고 전화가 왔고....
작은 아들집으로 향하여 가시고 계시는 이시간에 나는 컴퓨터를 마음대로 할수 있는 자유를 누려 보며, 한편으로는 나의 양심이 나를 괴롭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자유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여 볼까를 계획해 보기에 내 마음은 바빠진다.
시부모에게 효도 잘 못한다고 남편에게 매 맞고 사는 사람이 요즘 세상에 나 말고도 또 있다면 나는 그들을 위하여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죄 짖기전 에덴 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부모가 없었노라고.
부부가 먼저 하나가 되어야 모든 에덴의 비밀이 밝혀 지는것이라고.
예수께 나는 항의 했었다.
장가를 가 보시고 100살까지 살아 보신후에 진리를 말하였었더라면 훨씬 내가 수월하게 살았었을것 아닌가요?
부부가 하나되는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 했었는데 .....
부부가 하나되는것이 가장 진리임을 깨달을수 있게 되었다.
우리 시부모님께서는 겉으로는 잉꼬부부 같이 보이는 위선자부부이시지만 전생에 부부는 원수였다. 라는 말이 실감날정도로 우리 시부모님은 원수지간처럼 지내 오셨다.
그러나 성녀가 아닌 내가 이 가정에 들어옴으로써 드디어 우리 시부모님께서 서로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 하라, 를 가장 잘 실천 하실분들의 모습으로 한국에 잠시 방문을 가셨다.
12월 말이날, 다시 장남이며 맏며느리인 우리 부부에게 돌아 오시기 위하여 다른 아들인 나의 시동생과 작은 며느리에게 좋은 대접 받고 돌아 오실것이다.
장남과 결혼하여, 그것도 마마보이같이 병적인 내 남편과 내가 먼저 하나 되려고 투쟁하여온 기록들을 하자면 아마도 성경책보다도 더 재미있는 책 한권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 한다......
효자도 돈이 있어야 될수 있다. 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이것 저것 선물을 사 드려서 공항에 배웅해 드렸더니 어머니의 기분이 풀리셨고, 우리 고부지간은 차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하였지만......
아래 글의 메이저님이 어머니와 제사문제로 어머니의 고집을 이야기 하는 글을 읽어 보면서,
노인네들의 고집을 꺽을수 있는것은 오직 운명의 날인 그 시간뿐임을 절실히 깨달아 볼수 있었다.
그러나 이세상에서 고집이 가장 센 사람은 나 한 성순 임을 실토 한다.
그러하여 나는 성녀가 결코 될수 없음도 잘 안다.
그저 나는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나는 나인채로 살고 싶다.
청년 허준님이 올려주신 노래 처럼 인생을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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