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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미국땅에 살아도 만나기가 그리 쉽지않지요.
워낙 땅이 넓은 나라이다보니.....
98년도에 가족과 헤어져 살게 되는것이 너무 슬퍼서 함께 모여서 오손도손 살려고 미국으로 왔지만 세상은 우리 가족이 한 지붕아래에서 오손도손 살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는군요.
한국은 시집갈때까지, 시집가서도 부모들이 끼고 살지만 미국사회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대부분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어서 부모와 자식이 따로 떨어져 살면서 서로 그리워하고 아니, 일방적으로 부모만 자식을 그리워 하는것이지만 학교문제와 부모의 생계문제의 터전이 맞물려지는 같은 지역에 살지 못하게 되어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가정이 많답니다.
고1짜리 딸을 갑자기 미국으로 데리고 나왔었던 우리는 2년만 미국에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었으나 고3때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보아야 대학의 문근처에도 못가보게될것이 불보듯뻔하였기에 딸을 미국에서 대학에 보내놓고서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면서, 교육문제를 탓하며 이산가족의 슬픔속에서 살아보려고도 했지만 도저히 자식과 헤어짐을 생각할수 없었어요.
그래도 딸의 장래를 위하여 이산가족의 슬픔을 고수하려고 마음 단단히 먹고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초등5학년 아들 마저도 한국에 돌아가서 학교 다니고 싶지 않고 미국에서 학교 다니고 싶다고 하여 우리는 어쩔수 없이 이 미국땅에 눌러앉아살기로 하였었지요.
이산가족으로 살아가기가 너무나도 힘겨울것 같아서......
1여년을 미국회사에 일자리를 알아보는 도중에 한국에서 가장 최고의 명문대와 최고의 학벌인 박사학위까지 공부하였던 남편을 이 미국넘들이 알아주지않는것에 대하여 우리는 약소국민이라는 사실에 무척 자존심 상하였었던 기억을 해봅니다.
우리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보아도 우리나라땅 한귀퉁이를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래, 미국에서 눌러 앉아서 대한민국인의 우수성을 발휘하여 이 미국넘들에게 대한민국인의 위력을 당당히 나타내어 보자.
라는.....
그렇게 눌러 앉아 살게 된지도 어연 7년이 다 되었네요.
다시 2년만에 돌아갈 계획으로 나왔다가 눌러 앉게 되니 졸지에 나의 친정식구들과는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네요.
이북과 남한이 마음대로 왕래할수 없는 이산가족이라면 미국과 한국에 왕래할수 있는것이 그리 만만치 (돈) 않기 때문에 그저 그리워만 하면서 살고 있지요.
저희 남편은 마누라 없이는 살수 있어도 엄마없이는 살수 없는 효자인지라 시부모님은 바로 모셔와서 함께 살고 있고 한국에 남아있는 단 한명의 시동생의 가족도 아예 미국으로 건너와서 같이 명절이면 모이고 외롭지않게 살게 되기를 원하는데 시동생네는 중국이 좋지 미국은 싫다고 하네요.
저는 제가 외로워서 친정식구들인 형제 자매들과 엄마도 다 미국으로 와서 살게 되기를 원하여 보았지만 20~30년전에 미국에 와서 부모초청에 형제초청하여 화기애애하게 잘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웃에 살아도 서로 왕래않아며 상종하지 않고 이산가족으로 살기를 자처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몸은 멀리 떨어져서 이산가족으로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더욱 가깝게 서로 그리워하면서 사는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라고 하여 장애인이된 동생(카멜)을 이곳 미국으로 데리고 와서 살게 하고 싶었지만 제 마음이지 제 남편과 시부모님과 제 아이들은 도무지 관심이 없네요.
이것이 출가외인의 서러움이며 여자로 태어난 서러움이라는 것인지......
자유게시판에 인간극장,죽마고우, 작가님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장벽을 허물어 보시려고 애쓰고 계신점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저의 가슴속 깊은 한숨이 지어집니다.
왜냐하면 남도 아닌 처남이며, 외삼촌이며, 사돈인 제 동생이 장애인이 되었어도 무관심이고 모른척하는데 누가 장애인들을 돌아보아 주려나.... 하는 씁쓸함때문에.....
제 동생은 오히려 비장애인보다도 더 씩씩하게 살면서 도리어 저보고도 자기를 동정하지 말라고 하는 당당함과 자신감에 차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사노라니 누나로서 먼 발치에 서서 기도 밖에는 해줄것이 없군요.
이번 주말에 저희 딸이 뉴욕에서 왔기에 저는 외삼촌이 TV 에 나왔었다면서 인테넷으로 보여주려고 했지만 "나중에 볼께" 하고는 결국 오늘 새벽 비행기타고 훌쩍 가버리는 22살(미국나이)의 딸이 야속하여 저 혼자 속울음을 울며 집에 돌아와 제 마음을 털어 놓을수 있는 이 알피창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이 주희 작가님이나 다른 분들의 성함을 보니 모두 여자분들이시던데 혹 남자분들은 아니신지.....
저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었던 사람인데 하나님 어머니를 만들어내어서라도 믿고 싶어진 사람일 정도로 여자로 태어난 한을 가슴 가득 품고 살아왔었지요.
하지만 나이 50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뒤안길과 좌우와 앞날과 내지신과 모든것들을 돌아보니 그래도 내가 아직은 두아이의 어머니로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쳐보고 있는 제 자신이 대견스러워 보입니다.
미국까지 와서도 딸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 그리고 딸에게 야속함도 느껴 보고 살지만 그래도 같은 나라에서 서로 연락하고 통화하고 1년에 2어번은 만날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희 한국에 살고 있는 식구들은 6년6개월만에 만나보아야 했던것에 비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법정스님이 쓴 책인 버리고 떠나기를 아주 잘 읽었었던 기억이 나며 오늘 새벽 딸을 떠나 보내고 오면서 저는 생각 했습니다.
버리고 떠나기가 아닌 떠나보내기를 하자고 내 마음에 다짐과 다짐을 해 봅니다.
우리 알피라는 질병으로 아픔을 함께 나누시는 알피가족 여러분,
어느 누구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하기 이전에 우리끼리 서로 관심과 사랑을 갖고서 같은 아픔을 아파야하는 동반자들로서 서로 가족같은 사랑과 친구같은 우정으로 이 협회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보면 어떨까 하고.....
그러하여 우리 힘으로 미국천국, 노인천국, 이라는 그런 단어대신 알피천국이라는 새 단어를 우리힘으로 스스로 만들어 봄이 어떠할지요........
가녕님의 글을 읽고서.... 한마디 주저리 떠들다 나갑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일어섭시다.
한국인의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서......
동정받기보다는 동정해주어야 할 사람이 이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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