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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마루 조화로운 소리
    샤이 2005/08/05 704
      햇살마루 : 조화로운 소리 저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글 같아서 올려봅니다. 불을 끄고 눕자 달빛이 방 안 깊숙이 들어옵니다. 열이레 달인데도 숲 전체를 훤하게 비춥니다. 무논으로 굴러들어가 어린 모가 잘 자라도록 어깨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연못 속의 도롱뇽 어린 새끼들이 연잎 아래 깃들어 잘 자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혼자 잠 못 들어 뒤척이는 산골 사람들의 방 안도 다 들러서 내 방까지 왔을 것입니다. 그냥 떠 있어도 휘영청 밝은데 창 안으로 달빛을 길게 들여보내고 있습니다. 달 하나만 곁에 있어도 외로움이 훨씬 덜합니다. 고마운 달입니다. 달빛 아래 누워 있다가 25 현 가야금 연주를 듣습니다. 가야금 줄을 스물다섯 줄로 개량한 25 현 가야금 소리는 유려하고 밝습니다. 마음의 걸음이 가뿐해지고 경쾌해지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습니다. 숲이 너무 고요하여 가야금 소리가 하늘의 달에게까지 들릴 것 같습니다. 달이 듣는 소리를 별들이 알아듣고 얼굴을 지상으로 조금 더 가까이 내미는 듯싶습니다. 가야금 소리의 물결이 별빛으로 튀어올라 귀밑머리를 흔들며 지나갑니다. 스물다섯 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소리의 물결'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옛 것에서 시작하였으되 더 새로워진 소리. 법고창신한 소리입니다. 법고창신하였으면서 더 조화로워진 소리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소리, 더 은은하고 아름다워진 소리의 무늬 위에 누워 있노라니 새들까지 이 소리를 알아듣고 느릿느릿 화음을 더합니다. 줄 하나하나가 다름으로 하여 어울려 나오는 조화로운 소리. 그렇게 이루는 화음은 오묘합니다. 굵기도, 길이도, 높이도 달라 음악이 되는 이치를 가야금은 가르쳐 줍니다. 소리의 높낮이도 없고 길고 짧음도 없이 똑같았다면 아름다운 소리를 이루어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화이부동하는 소리입니다.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지만 똑같지 않은 상태를 '화이부동'이라고 합니다. 제 소리와 다른 소리가 어울리면서 서로를 살리는 소리입니다. 한 소리가 다른 소리를 지배하지 않고, 작은 소리가 큰 소리를 따라다니며 제소리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낼 수 있는 게 악기 소리입니다. 소리마다 제 음을 지니면서 뇌동부화하지 않아야 유려한 음악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소리만 그런 게 아닙니다. 사람살이도 그렇습니다. 각자 자기가 지닌 음색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기 소리가 다른 소리와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목소리만 따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상사가 부하 직원들에게 똑같아지기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조화가 아닙니다. 상생의 소리가 못됩니다. 획일화되기를 요구하면 창조적인 삶은 거기서 멈춥니다. 말 없는 순종, 복종 뒤에 따라오는 침묵을 보고 좋아한다면 그는 전체주의 사고에 길들여진 사람입니다. 아버지와 다른 소리를 낼 때 거기서 원효 같은 인물이 나오고, 다시 그 원효 같은 스님에게서 설총 같은 유학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소리는 강하게 살아 있는데 다른 소리들은 죽어 있다면 그건 음악이 아닙니다. 조화로운 삶은 각각 다른 소리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잘 스미면서 만들어집니다. 조화로운 삶이야말로 좋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동이불화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서로 공유해 온 삶, 동질적인 요소가 더 많음에도 화목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려 하고 힘으로 누르려 하기 때문에 쉽게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양보와 이해와 관용과 포용은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양보하면 불편할 것 같지만 마음이 더 편안해집니다. 이해하면 내가 지는 것 같지만 나와 상대방까지 더 잘 아는 사람이 됩니다. 관용하면 더 큰 사람이 되고 포용하면 더 넓은 사람이 됩니다. 결국 손해보는 사람은 편협하고 독선적이고 옹졸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가야금 소리를 베고 달빛을 덮고 잠들었다가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어떤 새는 '또부르르또부르르짹' 하고 울고 어떤 새는 '토끼야토끼야'하며 토끼를 놀리는 소리를 냅니다. '째재발째재발' 우는 새도 있고 '찌르찌르찌르' 우는 새도 있습니다. 멧비둘기 소리는 '네뒤에그애공 네뒤에그애공' 하는 낮은 음으로 깔립니다. 호랑지빠귀, 딱따구리, 산까치, 검은등뻐꾸기,,, 온갖 새들이 우는 아침은 더욱 신선하고 맑습니다. 서로 다른 소리가 가득해도 그래서 더 듣기 좋습니다. 저마다 제 소리를 가진 새들 하나하나가 숲의 주인입니다. 조화로운 음악은 사람만 만들어 내는 게 아닙니다. 새도 꽃도 숲도 다 조화롭게 사는 게 가장 좋은 삶임을 압니다. 그게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글 : 도종환 님(시인) 좋은생각 7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