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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바람에 나부끼는 오성홍기가 펄럭이는 인민광장. 바로 앞에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구도 우룸치의 최고급 백화점인 천산백화점이 위치하는데, BMW, 메르세데스, 아우디 등의 고급 자동차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광경이 서울의 압구정 못지 않다. 흰색 대리석 벽면에 보란듯이 새겨진 롤렉스(Rolex) 로고는 불과 십 년전만 하더라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건물에 들어서 지하 식품 매장으로 내려가면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중국 남부 해안에서 매일 항공편으로 운송해오는 싱싱한 해산물을 판매하고, 일 층에는 샤넬, 키엘, 바비 브라운 등 뉴욕이나 홍콩의 백화점에서나 볼법한 고급 화장품 브랜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손님을 맞는다.
계단을 통해 이 층으로 올라가자 이태리제 고급 청바지 브랜드인 '디젤'이 먼저 눈에 뜨인다. 그 다음으로 아르마니 진, 캘빈 클라인, 심지어 타미 힐피거까지, 없는 게 없다. 상해나 북경에서는 흔한 풍경이지만 중국 현지인들에게도 일종의 '유배지'로 여겨졌던 이 초원 위의 어수선한 도시에 불과 사반 세기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90년대 초의 소련 붕괴와 개혁개방 직후부터 중국의 동부 내륙해안은 그 후 이십년 사이에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중앙아시아와 맞닿아 있는, 소위 말해 '실크로드'라 일컬어지는 이 지역은 여전히 '사막과 산맥이 뒤엉킨 오지'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고속도로와 철도 같은 교통망은 미비했고 우룸치 공항의 운항 스케줄은 거대한 칠판 하나에 분필로 새겨넣어도 충분히 소화될 정도로 뜸했다. 주민들 대다수가 투르크계 이슬람 교도들인 이 지역을 이야기하면, 중국 내륙인들은 먼저 달콤한 하미과(멜론의 일종)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덩샤오핑이 주창한 중국식 사회주의의 마지막 혜택을 받고 있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눈부신 발전은 이제 비밀도 놀라움도 아니다. 그야말로 현실이다.
2007년, 처음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단지 대학 졸업을 막 앞둔 풋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스물 세 명의 학과 동기들과 선배들, 그리고 지도교수와 함께한 열흘 무렵의 짧은 여행에서 느꼈던 감회는 지금까지도 내 삶에 XUAR(Xinjiang Uyghur Autonomous Region)이라는 선명한 알파벳 약자를 그리고 있다.
당시에는 내 눈이 꽤 좋았던 것 같다. 물론 휴대용 랜턴이 있었지만, 사진을 찍으며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기는 어렵지 않았다. 흔히 '실크로드'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이 지역은 날씨도 좋을 뿐 아니라 음식도 맛있었고 사람들까지 친절했다. 어딜가나 도시는 평화로웠고 어린아이나 노인, 아낙네 할 것없이 미소와 웃음이 넘쳐흘렀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시야가 좁아지기 전에 한 곳이라도 많이 다녀야 한다는 부친의 후원 덕에, 당시까지 상당히 많은 나라를 여행했던 나로서는, 그만큼 아름답고 '살고 싶다'는 애착이 느껴진 장소도 드물었다.
그러나 거의 7년이 넘은 지금은 약간씩 힘이 든다. 두달 전에 서울의 안경원에서 난생 처음 짙은 푸른빛을 머금은 안경을 주문했다. 이제 겨우 서른인데, 보통 노인들이나 끼고 다닐법한 이런 색깔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자괴감마저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각보다 어둠은 빨리 찾아왔고 눈 앞의 반짝이는 별은 해가 지날수록 배는 어른거렸다. 예전에는 빛이 없음을 두려워했지만 이젠 그토록 바라던 빛의 풍족함도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자연스러운 발걸음, 이제 그것마저도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약간 허리를 굽히고 자라처럼 고개를 늘이빼며 언제라도 손이 앞으로 향해 장애물을 움켜쥐거나 밀어낼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사나이다운 대찬 걸음보단 어린아이같은 종종걸음이 더 익숙하다. 어찌보면 영락없는 유인원의 걸음걸이다. 알피 덕분에 진화가 거꾸로 되는 것일까?
오랜만에 만난 사랑하는 친구들, 나보다 훨씬 어리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친구들이지만 유독 애착이 간다. 7년 전에 내가 사진을 찍어줬을 때는 그저 웃기만 하는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이 벌써 중학생이 됐고 둘째 동생까지 생겼다. 첫번째 친구 이름은 누르굴, 투르크어로 Gul은 꽃을 뜻하고 Nur는 빛 혹은 태양을 말한다. 그러니까 즉 해바라기라는 이름이다. 두번째 친구 이름은 하디체, 하디체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흔히 그렇듯이 성녀의 이름을 따왔다. 그 뒤로 메디나, 아라파트, 모하메드 등등...
나는 칠 년 전에 비해서는 비약적으로 향상된, 그러나 여전히 내 암흑 속 걸음걸이처럼 느리고 뒤쳐진 어조의 위구르어로 이렇게 묻는다. "약시므시즈?" 그들은 웃으며 대답한다. "벡 약시" 아주잘 지낸다는 인사치레다. "시즈 카이시 맥탭다 오쿠와티시즈?" 하디체가 이제 중학생이 되어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궁금해 물었다. "온우치 맥탭다" 제 13 학교에 다닌다는 그녀의 눈빛에서 지금의 내게서 찾아볼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누르굴이 갑자기 배고프다고 울상이다. "시즈라르 폴로 볼드마?" 나는 아이들에게 양고기 볶음밥이 어떠냐고 묻는다. 어린 친구들의 부모들은 낯선 외국인과 아이들이 따로 나가서 밥을 먹는 것에 염려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은연중에 사람들의 눈을 피하게 됐고,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이 사람들은 사 년만에 찾아온 이방인의 눈빛이 허공을 향해도 그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다.
벌써 식사를 마친 아이들을 제외하고 나는 누르굴, 하디체와 함께 근처의 작은 볶음밥집 '쉬파이그자 폴로한세'를 찾았다. 쉬파이그자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친구가 말하길 '먹으면 건강해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곳의 양고기 볶음밥은 다른 식당들과 달리 정말 알차다. 오후 네다섯시 무렵까지밖에 문을 열지 않는 이 식당은 매일 서너 마리의 양을 직접 골라 도축한 뒤 밤새 손질을 마치고, 새벽녘부터 당일분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한국이나 이 곳이나 잘 되는 식당의 비결은 매한가지인 셈이다.
작은 사이즈는 18위안, 우리 돈으로 치면 약 4천 원이 채 안 되지만 이 곳 사람들에게는 절대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쉬파이그자 폴로한세의 볶음밥은 뼈에 살이 그대로 붙어 있는 오리지날 양고기를 쓴다는 점에서 이 지역 최고의 폴로(볶음밥)로서 손색이 없다. 다른 식당들은 보통 기름이 적은 소고기를 넣은 엔젠폴로(Anjan Polo)를 내놓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볶음밥을 금시에 뚝딱 해치운 두 친구가 마냥 싱글벙글이다. 총 54위안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오자 아이들이 벌써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그 즐거운 광경을 보며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어디에라도 걸려 넘어지만 그만큼 고역도 없다. (알피 환자들의 정강이는 입식타격기 선수들의 정강이만큼 단련되어 있지만, 넘어지는 건 속수무책이다.)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나서, 나는 혼자 걷기 시작한다. 여름에는 카라코람 산맥에서 내려오는 빙하수가 사막의 모래와 뒤섞여 묘한 황토빛 내음을 풍기는 투만 강의 겨울은 참으로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나는 여기저기 파헤쳐진 강바닥 주위로 피어난 수초 같이 '어떻게라도 되겠지'하는 심정으로 걷는다. 푸른 잎이 무성하던 포플러 나무는 하얀 눈밭의 회색 여우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어이쿠, 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런데 넘어지진 않았다. 반사신경은 좋은 걸까.
족히 오백 년은 넘었다고 하는 유서 깊은 이드 카 모스크 앞에 '당도'하자마자 나는 약간 기운이 샘솟는다. 뭐랄까. 이렇게 어두컴컴하고 흐린 날에 여기까지 무사히 걸어오다니, 이건 여간 길조...아니 상서로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좋은 일이 생길지 나쁜 일이 생길지 전혀 모른다. 그건 빨간 가로등을 이정표 삼아 차가운 콘크리트 벽을 더듬어가본 사람만이 아는 일이다. 아무튼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부 네차 폴?" (저거 얼마에요?) 그렇다. 나는 뭔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모든 알피 환자들이 그런지,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쇼핑몰이나 백화점을 다니는 것을 강변을 산책하는 것보다 배는 좋아한다. 왜냐고? 더 안 보이기 전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적어도 그런 장소에서 어둡다고 길을 잃거나 헤맬 염려도 없으니까. 나는 '천 년의 거리'로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우스탕베이 거리에서 유명한 쌈싸(양고기 만두)를 두 개 샀다.
쌈싸는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인도 북부와 중동에까지 널리 퍼져 있는 일종의 간식거리지만 현지 사람들은 아침이나 점심으로도 즐겨 먹는다. 과정은 간단하다. 부드러운 양 살코기, 지방을 채썬 양파와 버무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후, 이 속을 밀가루 반죽으로 엉기성기 싸고 나면 곧잘 둥그런 부뚜막에 빙그르르
두르고 구워내는 음식이다. 소고기나 낙타 고기로 만드는
사례도 종종 있지만 어디까지나 양고기로 만들어야 제 맛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쌈싸의 속을 베어물기 전에, 쌈싸
바닥에 간혹 붙어있는 암염을 제거해야 한다. 우스탕베이의
쌈싸는 여전히 암염을 일정부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암염은
바다가 먼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 중동에서 예로부터 천연
조미료로 널리 쓰였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에서는
구경하기조차 힘든 식재료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먹다보면
배탈이 나기 십상이다. (어디까지나 돌에서 캐낸소금이기
때문이다. 혀를 대보면 정말 짭짜름한 맛이 난다.)
그렇게 두 개를 후다닥 해치우고 나니 더 기분이 좋아진 채로
거리를 걷는다. 어느 새 기도 시간을 알리는 미나렛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하는데
그 신앙심은 한국의 개신교 사회 못지 않다. 얼마나 독실한지
무슬림 가이드와 함께 여행을 하면 무조건 기도 시간에는 차를
멈추고 최소한 십오 분은 기도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차차 그들과 접할수록 '그러려니'하는 여유마저
생긴다. 그러나 나를 접하는 사람들은 내가 어두울 때는 그리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순식간에 오후의 첫번쨰 기도 시간이 끝나고, 두번째 기도
시간이 가까워졌다. 두번째 시간은 오후 6시 40분 경이다.
즉 슬슬 해가 뒤꽁무니를 뺼 채비를 하는 무렵이라는 거다.
알피 환자들에게는 가장 마음이 급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만일 내가 무슬림이라면? 나는 이 시간에 기도를 하기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하얀 실내등을 켜야겠다는 생각부터
할지도 모른다.
노을이 진다. 사방에 그토록 보기 싫은 파란 빛이 시험
시간보다 더 빨리 엄습해온다. 어쩔 수 없지만 정말로 하기
싫은 그 무엇의 시간.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여기서
쓰려고 일부러 산 170위안짜리 싸구려 노키아 핸드폰을
부여 잡는다. 이런 제길! 2000룩스의 빵빵한 빛을 자랑하는
30만원짜리 손전등을 숙소에 두고 온 것이다... 그래서
어설픈 LED 라이트 기능이 덧붙여진 이 핸드폰으로 어떻게든
해보려 한다.
택시를 탈까? 그런데 도로 옆으로 차들이 종횡무진 쌩쌩
달려간다. 나처럼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벌써 한 트럭은
되어 보인다. 게다가 기도 시간이라 택시기사들이 다 모스크에
가 있다. 낭패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핸드폰의 LED를 켰다. 휴우, 약간 안심이 된다...그렇지만
쥐꼬리만큼 비춘다. 후...별에서온그대...그렇다 별에서 온
그대가 나를 엄습한다. 춘절의 폭죽보다 더
화려하고 끊임없이 반짝이는 이 불야성 같은 빛의 일렁임들...
어딜가나 사방은 불꽃놀이 신세다. 도무지 앞을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길은 가야지...다행히 길치는 아니기에
숙소까지의 경로는 대충 짐작이 간다. 그런데 도보로 십오
분은 걸리는 거리다. 달빛이 시커먼 안개에 가려진 오늘
같은 날씨의 밤에는 십오 분이 뭐냐. 삼사십 분은 족히
걸린다. 지팡이도 없는데 또 어떻게 손을 내젓고 다니나
걱정이다.
그래...좋아...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다... 쿵!!!!!!!
읍.........또야? 내 정강이가 암초에 걸렸다... 제길..
잠시 동안 낑낑대며 피가 흘렀는지만 확인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아니 끈다!! 낮에는 유인원...밤에는
좀비가 되어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망망대해를 건너는 초야의
나룻배처럼 그렇게 희미한 등대를 이정표 삼아 하염없이
움직여 갔다...너무 수사적인 표현인가? 그냥 쉽게 말하자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거지로 낑낑대며 나를 끌었다.
오오... 드디어 익숙한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좋다 좋아.
안도의 기쁨, 환희의 물결이 저 앞에 넘실거린다. 내가 드디어
해낸 것이다... 목표가 눈 앞에 있다.
이제...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다 왔다..빨리 들어가서
씻고 내일을 준비해야지..내일은 어디로 갈까 벌써부터
기대가 남다르다. 부디 날씨가 좋았으면, 아니 너무 좋아도
문제다. 눈부신 햇살은 곤란하다. 너무 화창해도, 너무
흐려도 문제다.
어.........어? !!!!!!!!!!! 나도 모르는 순간...거친 아스팔트
바닥에 양 손을 짚고 엎드려 뻗쳐를 외치고 잇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제길...이번 장애물이 반사 신경으로 뛰어 넘기엔
너무 컸던 탓이다. 정강이가 또 심하게 아려온다. 발목도
아프다...손바닥은 쓰라리고 쥐똥만한 눈물도 찔끔....
우쒸...억울하다.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하나...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쉬고 툴툴 털고 일어선다... 주변에 무언가
떨어트린 게 없는지 바닥을 더듬거린다.. 뭐라도 흘리면
다시 찾기 힘들다... 하다못해 낮에 동전이 떨어져도 어디에
있는지 주변의 도움을 구해야 할 형편이다.
그래...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자... 휴우... 로비에 들어선다..
흠! 조심해야 한다... 로비의 유리문 모서리에 헤딩할 위험이
있다... 방심해선 안 된다...무사히 숙소 로비를 지나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위쪽인지 아래쪽인지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닥치는 대로 누른다. 아래쪽에 불이
들어왔다. "아 내가 아래쪽은 눌렀네." 그제야 위쪽을
다시 누른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나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11층이 어디에 있지?" 역시 그냥 한 번 눌러본다...
9층이 걸렸다.. 다시 누른다 8층이다...우쒸 오늘은
운이 좋지 않다..어제는 한 번에 11층이 걸렸는데..
그렇게 결국 8 9 13 12층까지 누른 뒤에야 11층을
누른다. 같이 탄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다.
띵동.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노란 안내등을
하나둘씩 세어 본다..하나..둘..셋...넷! 네번째
안내등을 지난 방이 내 방이다. 방 문의 표식은
어차피 볼 수 없으니까. 이 방법이 내게는 더
빠르다. 카드를 댄다... 문이 열린다.....
디 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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