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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P협회와 함께 한 4년- 마지막
    바다의별 2004/08/20 867
      <결의문 사태와 그 후> 결의문 사태에 대한 부분의 판단은 회원들 각자의 몫입니다. 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커다란 충격이었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떠나려면 조용히 떠날 것이지 무슨 말이 구구절절이 많은가.... 그냥 제게 남은 애정표현 정도로 봐주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멋있게 떠나는 법을 알고 있지만 저는 이제 멋있게 떠나는 것에 미련은 없습니다. 의연한 척 임기를 채우면 책임감도 있어 보이고 혹시 박수를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을 잃은 상태에서 어영부영 사임의 시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제겐 잘 용납이 안되는 일입니다. 이제까지 마음으로 한 일이기에 마음을 잃었으면 거기서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일하지 않았으므로 누군가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기위해, 마음이 시키지 않는 일을 하지 않으렵니다. 이번 결의문 사태로 인해 서울에서 회의가 있던 날. 작은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형아가 학원 안 갔어요.” “왜? 학원가다가 배가 아파서 못 갔데요 ” 나는 아이가 제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는 틈을 타서 꾀를 부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꾀병하지 말고 자기일은 스스로 해야 하고 자기관리도 제대로 못하면 나중에 뭐가 될 거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다음날 또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는데 학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또 학원을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2시간 전에 학원을 간다고 나선 녀석인데 이 더위에 어디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화가 났습니다. 하필이면 이렇게 어수선 할 때 이렇게 속을 썪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였죠. 빨리 집에 가서 아이 좀 단단히 혼내주라는 말과 함께..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이 시무룩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많이 아팠었던 것 같다고....학원차를 기다리러 나갔다가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깨어보니 3시간정도가 지난 뒤였다고 했습니다. 벤치가 있는 그 자리는 그늘도 없는 땡볕인데... 갑자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저며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펄펄 끓고 있었고 배가 아파 학원을 못갔을 때도 작은 아이가 자기 용돈으로 약을 사다 주었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매일 밖에 나가 있어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결의문이 올라온 그 날부터 아이는 내내 아팠었고 매일 먹은 것을 토하거나 설사를 하면서 앓고 있었는데도 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 얼굴도 그때서야 자세히 눈에 들어왔는데 너무 핼쓱해 보였습니다. 왜 말을 안했니? 엄마 내가 말을 하고 싶은데 엄마는 계속 전화를 받고 있거나 밖에 나가거나 했고 한번 아프단 말을 했는데 엄마가 들은 척 하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늘 언젠가 예고없이 실명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아이들은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기를 바랬고 다른 엄마들처럼 이것저것 친절하게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엄마의 도움이 없어도 될 만큼 그렇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니야...뭔가 잘못되었다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러고 다니는 동안 매일 퇴근하고 나면 컴 앞에 앉아 있는 그 4년 동안 내 아이는 항상 내 등 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RP협회를 그간 너무나 사랑했고 사람들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제 아이에게 돌아가고 싶습니다. 협회가 내가 없으면 많이 힘들거라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능력이 있어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더 열심히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하지 않을 뿐입니다. 만약 재정이 튼튼한 협회였다면 저 같은 사람이 발을 내딛기 조차 힘들 정도로 능력있는 사람들이 발벗고 일을 했을 테니까요. 저는 이제 평범한 회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결의문 같은 일로 사퇴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이것은 저를 모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단지 결의문이 제가 좀 더 빨리 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재촉을 해 준 것뿐입니다. RP 협회는 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이끌어 갈 수 있지만 우리 아이의 엄마는 저 말고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이 일을 그만 두고 내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을 후회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일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우리아이가 간절하게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회장님이 사퇴에 대한 뜻을 처음 밝혔을 때도 저는 반드시 임기까지 채워야 한다는 주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임기를 못 채운 것은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이 자리를 사임한 후 회원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 저는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고 방관하지도 않을 것이며 누가 일을 하든 두 눈 똑바로 뜨고 질책도 할 것이고 칭찬도 아끼지 않는 협회의 충실한 바람막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집행부는 협회의 일꾼이기 전에 바로 우리 자신이고 똑같이 아픈 환우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들은 협회를 그리고 환우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바보들입니다. 회원과 집행부 나누어 생각지 마세요. 다만 좀더 애정이 많아 붙여진 이름일 뿐입니다. 제가 이 자리를 잠시 떠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정말 바보가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는 그 땐 있는 듯 없는 듯 한 자리에서 여러분을 돕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아이에게 돌아갈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