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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업무로 정신이 없던 어느날 오후 남혜운 회장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심포지움이 있는데 여기서 발표를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입니다.
다른 직장 같으면 빠져도 다음날 그 일을 몰아서 하면 되겠지만 저의 경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라 개인적인 일로 빠질 수도 없고 이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일이므로 늘 대외적인 일은 남혜운 회장님이나 사무국장이 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역시 발품과 시간과 돈이 드는 일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로 기쁜 것은 전에는 우리를 알리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요즘에는 가끔 원고도 부탁을 하고 참석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곳도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외적으로는 많이 알려진 단체가 되었습니다.
저는 참석을 할 수 없으므로 원고를 쓰고 남혜운 회장님이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망막색소변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라....
아직은 사회적 인식조차 없는 것이 맞는 표현이 아니던가?
생각보다 원고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떤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자는 것인데 인식조차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기에...
의사나 희귀 난치성 질환과 관련된 단체, 장애단체에는 우리 협회가 꽤 알려져 있으나 일반에게 망막색소변성은 아직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병이므로...
그래서 조금은 초점을 달리하여 환자를 대하는 의사 태도의 중요성과 시각장애인 중 시야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재 등에 대한 내용으로 전환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써 내려 갔습니다.
그 심포지엄에는 의사라든가 정치가 각종 단체 대표등이 참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자리에 계속 참여하는 것 역시 언젠가는 도움이 되리라 여기면서...
남회장님은 실무적인 일을 하지는 않으나 늘 이런 대외적인 일에 있어서, 그리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는 협회의 대표로서 제 역할을 훌륭히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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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북과 수기집, 그리고 한마음 음악회>
가이드북을 빨리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이 든 것은 건강이 자꾸 나빠지고 있었고,2학기에 예정된 학교 행사와 대표 수업 등에 대한 압박감까지 심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의 상태를 알고 있는 동료는 몇 안되었고 학년이 바뀔 때마다 이런 사실들을 공개적으로 알릴 수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오해도 받고 있었습니다.
시력이 나쁘다면서 일하는 것 보면 자기 할 일은 다하는 것 같고, 어떤 업무는 피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인사도 안하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한참동안 투명인간 취급하고...
하지만 뭐 어떠랴..... 당신들이 내 인생 살아주는 것 아니고 ..
오해도 좀 받고 살지요... 어차피 모두가 내 마음 같을 수는 없으니...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오해를 받는 것보다 힘든 상황이라면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므로...
한 두 번 말해도 알아듣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으나
일부러 옆에 와서 “나 보여? 이건 보여?” 하는 착한 척하는 얄미운 사람도 있으니...
2학기에 접어들면 모든 일이 힘들어 지리라는 급한 생각에
김만성씨에게 어느 날 협박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당장 가이드북 시작 안하면 난 빠질 테니 알아서 하시오’
그러자 연락도 잘 안되면 김만성씨는 즉시 한찬수씨 대동하고 인천까지 날아왔는지 달려왔는지 ....
당시 한찬수씨는 몹시 지쳐있었고 회사일이 복잡한 듯 했습니다.
얼굴을 보니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 일이 있는 후 가이드북은 팀이 구성되었고 여름방학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됩니다. 목차나 자료 등은 대충 아우트라인을 잡아 놓은 상태라 그 안에 내용을 선별하여 넣는 작업이 주가 되었고 이렇게 모이고 회의를 하는 장소를 구하기 어려웠을 때 선뜻 여의나루님이 사무실을 빌려주었습니다. 우리가 회의를 하는 동안이나 일을 하는 동안에는 늘 자리를 비워주셨고 끝나면 문단속을 하러 일부러 나오시는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늘 따뜻한 격려와 함께...
방학이 끝나자 이제는 원고를 전체적으로 다듬고 수정하는 작업과 사진 배치 교정 등의 문제가 계속해서 나타났고 문맥을 통일하고 단어를 쉽게 고치는 등의 작업은 이제 내 몫으로 남아 10월 중순이 되자 인쇄에 들어가도 좋을 정도로 완결이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것은 RP관련 혹은 질병관련의 가이드북이 거의 없어 참고를 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부스러기처럼 모여져 있는 자료들을 선별하고 엮는 과정이었고 이런 선별과정에서 서울대 인공안구센타 의 정흠교수님과 유영석교수님이 정말 정성껏 원고를 검토해주셨고 서종모 연구원은 사진자료까지 직접 제공하는 등 정말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습니다.
한편 김만성씨를 중심으로 수기집 팀도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고 열림원 사정상 책을 두 종류 한꺼번에 발행하기는 어렵고 우선 한권을 먼저 발행한 후 나중에 나머지 한권을 발행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우선 수기집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수기집 팀도 원고를 모으고 수정을 하고 편집을 하느라 매우 고생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파랑새는 시력도 매우 좋지 않아서 원고를 읽는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더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런 책들은 판매용이 아니었기에 출판사에서도 디자인이나 편집에 그리 많은 신경을 써주지 못했고 이런 일들이 고스란히 다 이들 일꾼들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마음 음악회...
그간 우리 협회사상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참여인원이 가장 많았고 가장 많은 자원봉사자가 동원되었고 음악회에 참석할 사람들을 섭외하는 일부터 장소섭외 리허설 그 외 여러 가지 홍보자료 준비등...
처음이라 미숙한 점도 있었으나 정말 여기에 참여한 분들이 얼마나 애쓰고 힘들었지는 그간 일을 한 경험이 많은 나로서는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었습니다.
저야 겨우 파워포인트 만들고 마이크 잡고 협회소개 한 것 밖에는 없지만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사람들은 한 달 이상 내내 고민하고 힘들었을 거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멀리 대전에서까지 고생하면서 뒤늦게 라도 참석한 것을 보고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며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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