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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후>
방송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유선방송을 통해 방송을 보고 연락을 해오는 사람도 꾸준히 있었고 얼마 안되지만 기부금을 내겠다는 분들도 생겼고 멀리 외국의 교포에게서도 격려의 편지가 오기도 했습니다. 회원수도 꾸준히 증가하였고 이런 모든 것들이 앞으로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자신감과 에너지로 작용을 하였습니다.
물론 여전히 뒷짐지고 이런 저런 비난을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 입장을 이해하려 하면서 설득을 하기 시작했고 표면적으로는 조금씩 협회가 모양새를 갖추어 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2001년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힘든 시기였는데 직장에서의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시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진단 결과 백내장이 양안에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담전화는 밤 12시 , 1시에도 왔고 주로 환우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과 반복되는 설명등으로 조금씩 지쳐갔으나 나름대로의 보람을 느꼈고 간혹 주기적으로 전화를 하여 힘들게 하는 환우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왜 이렇게 많이 기다리게 하냐며 저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부터 너무나 수고한다고 고마워하는 분들까지 내게는 다 소중한 인연으로 남아있습니다.
희귀질환연맹에서는 가끔 저에게 원고를 청탁했고 협회의 이름으로 나가는 여러 원고들을 대필하기도 하면서 번역일이 손이 모자라면 돕기도 하면서 시간은 흘렀습니다.
그렇게 힘들었지만 보람있었던 겨울을 맞았고 수도권모임이 조금씩 활성화 되면서 내부에서는 여전히 많은 고민을 안게 됩니다.
협회의 모습이 지나치게 친목중심의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비판과 또 한편에서는 지부가 어떤 모습으로 가든 자율성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서로의 견해차로 갈등도 있었으나 서로를 존중하면서 지부의 성격을 일단 지부장의 자율에 두기로 했습니다.
협회는 친목보다는 아직은 RP를 위한 사업에 더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환우끼리 만나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나.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되며 친목은 협회 주관의 큰 행사 속에서 이루어지거나 부수적으로 혹은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또 다른 분들은 친목이야 말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보는 입장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부마다 성격도 달라 특히 대전지부의 경우에는 협회가 지금보다도 더 일하는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강력히 촉구하고 협회의 모습이 점점 친목으로 가는 것을 비판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환우들 스스로 판단을 하리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아직은 그저 반갑고 서로 교류하는 것에 만족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생기리라....
지금은 자연스럽게 수도권지부는 세미나 혹은 환우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사를 주로 하는 협회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친목활동은 여러 사적인 모임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 변화 >
2002년 첫 정기총회가 열렸고 생각보다 많은 회원이 오셨고 2월에는 여의나루님을 중심으로 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당시 협회일에는 전혀 참여할 뜻이 없으셨고 단지 젊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데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는 생각을 비추셨습니다.
어느덧 협회가 자리를 잡아간다고 생각할 무렵 그간 여러 상황으로 인해 갈등을 겪던 조재선씨가 사임의사를 밝힙니다. 그간 너무 힘들어 했었다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에 만류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런 심정이었으니까요.
갑자기 협회가 어찌될 것인지 고민이 되었고 조재선씨 없는 협회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혼자도 10명 20명의 몫을 해냈기에 앞으로 어찌될 것인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협회는 자리를 잡게 되는데 당시 상담실장인 저와 정책실장인 한찬수씨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협회를 마땅히 끌어가기는 어려웠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았을 때 한찬수씨야 말로 능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판단과 선배님들의 설득에 드디어 수락을 하게 됩니다.
한찬수 사무국장은 직장생활의 경험을 살려 모든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사회를 구성하는데 당시 한찬수씨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10여명 되었으므로 이분들께 일일이 연락을 하기도 하고 추천을 받기도 하여 의사타진 후 이사로 영입하였습니다.
이는 대외적인 측면과 내부적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측면이 있었으며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힘든점도 있었으나 의결권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어떤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계기로도 작용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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