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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찬수 사무국장은 대외 활동보다는 회원의 내부결속력을 다지는 일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협회 일을 진행해갔고 그런 가운데 작은 사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모임에도 적극참여하고 지부모임에도 가능하면 참여하는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동안 나의 시력은 더욱 나빠져서 바로 앞의 것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백내장 증세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얼른 방학을 해야 수술을 할 텐데... 직장에서도 이런 저런 실수가 빚어지기 시작했고 그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신호등의 색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된 후 차들이 서있는 것을 보고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일 뻔한 일까지 겪고서야 수술을 서두르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수술을 앞 둔 며칠 전 타일로 된 계단턱을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와 꼬리뼈에 금이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수술은 해야 겠기에 다리에 기부스 하고 수술대에 누웠던 생각이 납니다.
누가 백내장 수술이 아프냐고 물어보면 난 대답을 잘 못합니다. 나는 누워있는 내내 다리와 꼬리뼈의 통증만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오른 쪽 눈을 수술한 후 3주후에는 왼쪽 눈을 수술하였고 한쪽 눈은 돗수가 잘못 맞추어져서 또다시 인공수정체를 교체하는 수술을 해야 했지만 수술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여름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해 11월쯤 사랑의 릴레이를 통한 성금이 전달되었고 사랑의 릴레이 정신에 입각하여 그 돈의 일부를 다시 희귀질환연맹에 기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서울대 인공안구센타의 연구기금으로 기부하였습니다.
이 돈은 운영비나 인건비가 아닌 특별한 사업을 위해서 써야 하였으므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느 것이 공익적인 일인가를 고민했고 당시 허술한 홈페이지를 좀더 기능을 추가하여 회원이나 일하는 사람이나 좀더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가이드북을 만드는 데도 일부 쓰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계획서를 사랑이 릴레이 측에 제출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간 단체등록을 위한 준비는 계속되었으나 여러 가지로 미진하기도 하고 회원들이 아직도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을 꺼려하는 것도 하나의 문제로 작용하였습니다.
어느날 또 한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희귀질환연맹을 돕고 있는 목사님 중의 한분이 RP에 관심이 있는 듯 했습니다.
교회에서 돕고 싶은데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케이스를 뽑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간 상담을 했기에 대충 회원들의 상황을 잘 아는 터라 가명으로 하여 여러 환우들의 어려움을 여러 케이스로 나누어 정리한 후 우리가 도움 받고자 하는 부분들을 상세히 글로 적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일반인이 보기에 우리의 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아닌 병이었습니다. 정말 고통 속에 죽어가는 병부터 다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이 전달되는 희귀하고 힘들어 보이는 병들이 이 세상에 너무도 많았기에 우리같은 RP는 오히려 축복받은 축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달 안에 치료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독한 병도 있고 치료제가 있는데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도 있으며 온 몸이 굳어가는 병도 있는데 대체 RP라는 병에는 치료비를 지원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당장 진로가 고민인 사람에게 취직을 시켜줄 수도 없는 문제이고 그렇다고 마음이 아프니 그 아픈 마음을 치료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역시 생각대로 아무런 지원금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기도나 해주면 고마울 뿐..
돈을 기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돈이 정말 절실하고 절박한 사람들에게 뭔가 뚜렷하게 도움이 되는 곳에 쓰이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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