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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찰스"를 애도하며....
    어니.. 2004/06/15 841
     
    <솔의 황제’레이 찰스 74세로 타계>
    -동아일보-
    
    “나는 음악과 함께 태어났으며 
      음악은 내 피의 일부이다.”
    
    시각장애를 딛고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가수로 군림했던 ‘솔의 천재’ 
    레이 찰스가 10일 오전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급성 간질환
    으로 타계했다(향년 74세)
    그는 작년 11월 엉덩이 이식수술을 
    받고도 
    "신이 부르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면서 새 앨범 작업을 계속할 정도로
    음악에 열정을 보여 왔다. 
    조지아주 소도시 올버니에서 태어난 
    그는 녹내장을 앓아 7세 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으며 15세때 고아가 됐다.
     
    하지만 
    피아노 알토색소폰 트럼펫 클라리넷 
    오르간 등 악기를 익혀 가수 피아노연
    주가 작곡가 밴드리더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1978년 펴낸 자서전에서 그는 
    “세 살 때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도 
    음악소리가 나면 딱 멈춰 노래했다”
    고 회고했다.
    
    그가 넘나든 장르는 팝 블루스 솔 
    가스펠(복음성가) 컨트리 재즈 록 
    펑크와 브로드웨이의 쇼 반주에 
    이르기까지 제한이 없었다. 
    
    특히 
    흑인들의 아픔이 담긴 솔 음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미국 대중음악의
    큰 기둥이 됐다. 
    반세기를 넘는 음악활동을 통해 
    그래미상을 13차례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시각장애에 대해 
    굳이 장애라고 한다면 혼자서 차를 
    몰고 길거리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
    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눈 뜬 사람처럼 하지는 못해도 
    내가 원하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는 것이 그의 인생철학이었다.
    
    15세 때 본격적으로 무대에 섰으며 
    10년 만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 등 
    히트곡을 포함한 60장 이상의 앨범을 
    펴냈다. 
    
    엘비스 프레슬리, 아레타 프랭클린, 
    스티비 원더, 밴 모리슨, 빌리 조엘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이듬해 그래미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두 차례 이혼하고 1952년 이후 독신으
    로
    지내 왔으며 12명의 자녀와 25명의 
    손자녀 및 증손자녀를 두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흐르는곡은 레이찰스의
      I Can"t Stop Loving You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