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의 황제’레이 찰스 74세로 타계>
-동아일보-
“나는 음악과 함께 태어났으며
음악은 내 피의 일부이다.”
시각장애를 딛고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가수로 군림했던 ‘솔의 천재’
레이 찰스가 10일 오전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급성 간질환
으로 타계했다(향년 74세)
그는 작년 11월 엉덩이 이식수술을
받고도
"신이 부르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면서 새 앨범 작업을 계속할 정도로
음악에 열정을 보여 왔다.
조지아주 소도시 올버니에서 태어난
그는 녹내장을 앓아 7세 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으며 15세때 고아가 됐다.
하지만
피아노 알토색소폰 트럼펫 클라리넷
오르간 등 악기를 익혀 가수 피아노연
주가 작곡가 밴드리더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1978년 펴낸 자서전에서 그는
“세 살 때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도
음악소리가 나면 딱 멈춰 노래했다”
고 회고했다.
그가 넘나든 장르는 팝 블루스 솔
가스펠(복음성가) 컨트리 재즈 록
펑크와 브로드웨이의 쇼 반주에
이르기까지 제한이 없었다.
특히
흑인들의 아픔이 담긴 솔 음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미국 대중음악의
큰 기둥이 됐다.
반세기를 넘는 음악활동을 통해
그래미상을 13차례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시각장애에 대해
굳이 장애라고 한다면 혼자서 차를
몰고 길거리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
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눈 뜬 사람처럼 하지는 못해도
내가 원하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는 것이 그의 인생철학이었다.
15세 때 본격적으로 무대에 섰으며
10년 만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 등
히트곡을 포함한 60장 이상의 앨범을
펴냈다.
엘비스 프레슬리, 아레타 프랭클린,
스티비 원더, 밴 모리슨, 빌리 조엘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이듬해 그래미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두 차례 이혼하고 1952년 이후 독신으
로
지내 왔으며 12명의 자녀와 25명의
손자녀 및 증손자녀를 두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흐르는곡은 레이찰스의
I Can"t Stop Loving You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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