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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불의 사나이 눈은 가능할까?’
2004년 한국망막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최신 연구 동향
2004년 6월 5일(토) 삼성서울병원 대강당에서 한국망막학회(회장: 김시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 주관으로 열린 제 8회 한국망막학술대회에서는 시각장애 환자들을 위한 인공시력전달장치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연구 동향 발표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나노바이오연구센터 정흠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가, 미국에서는 Doheny Eye Institute의 Mark Humayun 교수가 각 팀의 연구 진행 상황을 발표하였는데, 특히 후마윤 교수는 3명의 환자에게 초기 형태의 인공시각전달장치를 수술하여 물체가 움직이는 방향과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음을 보고하였다.
사회자: 인공시각전달장치란 무엇인가?
정흠: ‘인공시각전달장치[vision prosthesis]’는 외부의 빛을 뇌가 인지할 수 있는 신경 전달신호로 바꾸어 주는 눈의 신경 조직인 망막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전자 회로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인공시각전달장치를 ‘인공 망막(artificial retina)’이라고 하기도 한다.
김진두 기자(YTN): 인공망막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자들은 얼마나 되는가?
Mark Humayun: 망막에서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주는 세포인 광수용체가 파괴되어 시각을 상실하게 되는 망막색소상피변성(retinitis pigmentosa) 환자들이 1차 적용 대상이며, 4천명 중의 1명꼴로 발생하므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연령관련황반변성(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 역시 추후 적용 대상이 될 것이며, 65세 이상이 되면 이 질환을 앓게 될 확률이 20%나 되기 때문에, 인공 망막의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 3명의 환자에게 시술한 초기 인공망막은 어떤 형태인가?
H: 백금 전극을 4개씩 4줄로 배열한 16채널의 망막 자극기를 망막 위에 고정하고, 안경에 장착한 카메라로 얻은 화면을 전기 신호로 바꾼 뒤, 현재 환자에게 널리 시술중인 인공 와우와 동일한 원리로 전기 신호를 전극에 전달하여 살아 남아 있는 망막의 신경 세포들을 자극하는 방식이다.(그림 및 동영상 참조)
사: 인공 망막 연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정: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MEEI(Harvard)-MIT 와 Wilmer Eye Institute(Johns Hopkins Univ.)-NCSU(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1990년대부터는 NIH, NEI(National Eye Institute) 뿐만 아니라 DOE(Department of Energy) 및 NASA에서도 이들 연구진에 대규모 연구비를 지원하여 국책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Humayun은 17년 전부터 De Juan 과 함께 Wilmer-NCSU의 인공망막 연구를 주도하였으며, 2001년부터는 Doheny Eye Institut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 Diego)로 옮겨서 UCSC(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ta Cruz)와 함께 ERC(우수공학연구센터)를 운영하며 2002년 2월부터 FDA의 허가를 받아 환자를 대상으로 인공망막 시술이 안전한가에 대한 임상 실험을 진행중이다. 국내에서는 2000년 하반기부터 한국과학재단 ERC 프로그램의 세부과제로서 본 연구진이 연구를 시작하여, 현재 임상 실험의 전단계인 동물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김: 16개의 전극만 가지고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
H: 요즘 널리 사용하는 디지털 카메라의 화소수가 600만개임을 고려한다면, 16화소로 사물을 표현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와우를 개발하던 1970년대에 연구자들이 직면해 있던 가장 중요한 문제도 그것이었다. ‘3000개가 넘는 청각세포를 자극하여 소리를 구분하게 하려면 몇 개의 전극이 필요한가?’ 다행스럽게도, 사람의 뇌는 놀라운 적응력이 있어서, 단 6개의 전극만으로도 전화 통화가 가능한 정도의 인공 와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시각 세포는 수백만개로, 청각 세포의 개수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지만, 시술한 3명의 환자 모두 16화소 자극만으로도 명암과 사물이 움직이는 방향을 90% 이상 알아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H, I 등의 글자, 접시, 컵, 칼과 같은 물체도 60% 이상 구분할 수 있었다. 단, 현재 모델은 화소수가 적기 때문에, 보고자 하는 물체의 윤곽을 따라 환자가 머리를 움직여가며 살펴보아야 대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가 있다.
백수하(문화일보): 그 정도의 시각이 환자에게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H: 밝고 어두운 것을 알아보고, 사물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 수 있다면 눈앞의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환자가 식탁 위의 접시와 컵, 나이프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가 되면 혼자서 식사와 거동이 가능해질 수 있다. 정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정도의 낮은 시력이라도 시각 장애 환자들에게는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다.
김: 앞으로의 연구 일정은?
H: 2002년 2월 연구중인 인공망막의 첫 시술을 시행하였는데, 현재의 모델은 환자의 시각 기능 회복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고, 인공망막을 사람의 눈에 안전하게 시술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장기간의 망막 전기자극이 실제 인체에서도 안전한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FDA의 허가를 받아 시술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수술이 3명의 환자에서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지난 2년간의 추적 관찰에서 어떠한 부작용도 발견되지 않아서 전기 자극 임상 실험까지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현재 1000개 이상의 화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극용 칩이 개발되고 있어서, 향후 2년 내에 현재보다 자극용 전극 수가 많은 새로운 인공망막을 시술할 예정이며, 5년 정도 후에는 실제 임상에서 본격적으로 시술할 수 있을 정도의 인공 망막을 발표할 것이다.
사: 국내 연구의 진행 속도는?
정: 올해가 연구를 시작한 지 4년째 되는 해인데, 인공 망막의 핵심 기술인 망막 자극용 전극과 자극용 칩을 개발하여 동물을 이용한 시각 자극 유발 실험에 성공하였고, 반도체 기술을 이용한 실리콘 미세 망막못 개발과 망막내 신경정보처리 규명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임상 적용을 위한 인공망막 초기 모형을 제작하였다.(그림 및 동영상 참조) 2010년까지는 모든 개발을 마쳐서 실제 환자에게 시술을 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김: 인공망막으로 색을 느낄 수 있는가? 그리고, 소위 말하는 ‘600만불의 사나이’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
H: 현재 인공 망막은 각 화소에 빛이 있고 없음, 즉 흑백의 자극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 환자에서 푸른색으로 보인다고 말한 경우가 잠시 있었지만, 그때 잠시 뿐이었고 항상 명암으로만 인지하였다. 색을 느끼는 것에 대하여는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자극용 전극의 수가 많아지면 인지하게 되는 화소수가 늘어날 것이고, 보다 정확하게 사물의 윤곽을 느낄 수 있겠지만, 정상인의 시력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안경에 장착하는 카메라의 종류를 바꾼다면, 자외선이나 적외선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Humayun 교수는 망막 수술의 최신 기법인 무봉합 25G 유리체 절제술의 개발자로서 윤영희 교수(서울 아산병원 안과), Kenji Kawai 교수(Tokai 대)와 함께 그 결과를 보고하였는데, 수술 부위의 봉합이 사라짐에 따라 수술 후 눈의 충혈이나 이물감, 흉터가 거의 사라졌고, 회복 속도도 기존의 수술보다 매우 빨라서 수술 후 빠른 퇴원이 가능해지고 시력 회복도 빨라질 수 있음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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