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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인공망막수술+그래픽
`스티브 오스틴.'
1970년대 국내에 방영돼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미국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낙하훈련중 추락해 만신창이가 되지만 첨단기술과 기계의 도움으로 초인적 힘을 가진 사이보그로 되살아난다.
방영 당시만 해도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 정도로 인식됐던 일들이 가능해질 수 있을까?
한국망막학회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개최한 `제8회 한국망막학술대회'에서 선보인 첨단 의료기술들은 스티브 오스틴의 이야기가 현실화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날 학회 에서 미국 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마크 후마윤 교수는 시력을 잃은 환자의 안구에 인공 시각전달장치를 연결, 물체가 움직이는 방향과 형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후마윤 교수의 시술방식은 백금 전극을 4개씩 4줄로 배열한 16채널의 망막 자극기를 망막 위에 고정하고, 안경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얻어진 화면을 전기신호로 바꿔 살아있는 망막의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요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디지털카메라의 경우 화소수가 수백만개임을 감안하면 16개의 전기 자극으로 사물을 인식하는데 부족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0여년의 연구, 개발을 거쳐 최근 널리 시술중인 인공와우(달팽이관)의 예를 볼 때, 3000여개의 청각세포에 대해 6개의 전극만으로 자극을 가해도 전화통화가 가능할 정도로 청각장애 극복에 도움을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후마윤 교수는 16화소의 자극만으로도 사물의 명암과 이동방향을 90% 이상 감지할 수 있었으며, H와 I 등의 문자, 접시와 컵, 칼 등의 물체도 60% 이상 구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의 인공망막은 흑백만 구분할 수 있는 자극이지만 자극용 전극의 수가 많아지면 인식하는 영상의 정밀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안경에 장착한 카메라의 종류를 바꾸면 자외선이나 적외선 영상도 감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백수하기자 sooha@munhwa.co.kr
[인터뷰] 후마윤 교수 사진
"사람의 뇌는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있어서,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도 주위 상황을 유추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도체칩을 이용한 인공망막 시술법을 개발한 미국 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도헤니 망막연구소(Doheny Retina Institute) 마크 후마윤 교수는 "16개의 전기자극 만으로는 물체의 정확한 윤곽 조차 식별이 어렵지만, 어렴풋한 명암과 움직임 등을 통해 눈앞의 장애물을 피하고 식탁 위의 물건들을 식별하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후마윤 교수는 "그정도 시력을 가지게 되면 시각장애인들이 주위 사람들의 도움 없이도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초는 마련되는 셈"이라고 이번 연구성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3명의 환자에게 인공망막을 시술했는데, 2년간의 추적관찰 결과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아 전기자극실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현재 1000개 이상의 화소를 만들 수 있는 자극용 칩이 개발돼있어 5년 정도 후에는 실제 임상에서 본격 시술할 수 있을 정도의 인공망막을 발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라고 말했다.
후마윤 교수는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망막에서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광수용체 파괴로 시각을 잃는 망막색소상피변성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인구 4000명당 1명꼴로 이 질환에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전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이 `빛'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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