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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의 눈썹에 쌓인 먼지
    사랑밭편지 2004/05/11 837
      제목 : 아내의 눈썹에 쌓인 먼지 결혼한 지 1년 만에.... 아내가 쓰러지고 일어나지 못합니다.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나 넓기만 합니다. 결혼생활 23년 중에 저는 줄곧 병마와 싸우는 아내와 살아와야 했습니다. 아내가 처음 쓰러진 것은 1981년 초 결혼 1년 반이 지나서였습니다. 여느 신혼부부들의 단꿈을 중환자실과 병실을 넘나들며 보내야 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일어난 몸으로 가정을 꾸리며 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이 여간 고통이 아니었으나 아내는 강했습니다. 이화여대를 졸업했던 아내는 의류 직물학 분야의 전통 있는 일본 오차노미쯔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이화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쓰러지기 전까지 아내는 한성대학교수로 출강도 했습니다. 그런데.... 행복을 시샘해서인지 10여년쯤 넘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사건,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1999년 8월에 아내는 두 번째로 쓰러진 것입니다. 유달리 저를 사랑했던 아내가 보호자도 허락된 시간에만 들어가야 하는 중환자실에서 꼼짝도 않은 채.... 사랑하는 남편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웠습니다. 상태가 잠시 나아져 집으로 데려와 돌볼 때 지방출장으로 인해 며칠 간 돌보지 못하였고 간병하던 친척아줌마도 경황없이 돌보는 사이 아내의 눈썹에 쌓인 먼지를 보고는 저의 가슴이 갈래갈래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정말 당신 이렇게 살다가 가야만 하오? ...... 아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먹는 것도 호수를 통해 넣어줘야 하고 배설을 하는 것은 물론 손끝하나 발끝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가 내 나이 70이 되는 10여년 후에도 이렇게 누워 있어야만 하는 것인지요? 여기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바램이 당신의 영혼에 전해져 벌떡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나를 힘껏 안아 주시오. -----------------------------------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에 묻혀 살아야 당신의 고통을 잊을 수 있고, 또 일에 묻혀야만 나를 지킬 수 있기에 오늘도 저는 일에 묻혀 파김치가 되어 한밤에 들어와야 하는 심정, 당신은 아십니까? 온몸이 피곤에 지쳐야 잠을 잘 수 있는 심정을 당신은 아십니까? 맡은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자 하던 당신이 일본 유학 갈 때 그렇게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빨리 일어나 나를 도와주십시오. 당신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싶고 당신이 다려준 와이셔츠를 입고 싶습니다. 당신이 현관에서 환하게 웃으며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는 말을 살아생전 한번만이라도 듣고 싶습니다. 여보! 신혼 초 당신이 이불속에서 손을 잡고 우리 평생 이렇게 살자던 당신이 이제는 내 옆에 있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누구와 말벗이 되어야 합니까? 부디 당신! 나의 애타는 23년의 기다림을 불쌍히 여기거든 벌떡 일어나 나를 껴안아 주시오. 당신이 일어나는 날 나는 하늘을 날겠습니다. - 당신을 기다리는 남편으로부터- ----------------------------------- 이 글은........... 1981년 결혼 한지 1년 만에 의식불명이 되어 수년 동안 지극 정성 간병으로 다시 일어났으나, 또 다시 5년 전에 쓰러져 의식 없이 살아가는 아내를 그리며, 시정업무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늦은 밤에 써 내려간 현 안상수 인천광역시장(56세)의 아내를 사랑하는 애타는 마음을 정리하여 여기 실었습니다. 2001년 발간한 안상수 님의 저서 뉴욕은 블룸버그를 선택했다의 내용을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