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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깨우침
    수제비 2004/02/12 906
      이름 정형란 제목 천천히 가는 길이 더 빠르다 서른 둘에 첫 아이를 낳고 더 안 낳기로 부부가 약속을 했는데 서른 아홉 늦은 나이에 갑자기 아이 가진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남편에게 화가 나서 잔소리도 해대고 어찌할까 고민하다 울기도 몇번했다. 상가집에 다녀온 남편이 형제없이 외동인 친구가 궂은 일 맞아 힘겹게 일처리를 하는 것을 보고 혼자서 결심했단다. 큰 아이에게 동생 하나를 더 낳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 당할 때 의논할 상대를 갖게 해주는 것이 하나만 낳아 잘 키우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이요,유산이라고.... 남편도 둘째 키울 때는 도움을 많이 줘서 첫애 키울때보다 덜 힘들었고 나도 첫애 키운 경험이 있어 느긋한 마음으로 키워서 인지 다들 둘째녀석을 보면 신통하다고 한마디씩 했다. 사실 말도 늦고 제또래 다른 애들에 비해 매사 더뎌보이는 구석도 많았지만 그다지 조급해 하거나 안달하지 않고 키웠다. 그러다 올 겨울 유치원 방학숙제로 달력 써 오기가 있어서 연필잡고 숫자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열흘이 지나도록 5자와 8자를 익히지 못해서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둘째놈 손목에 힘이 들어가다 보니 쓰기가 더 엉망이 되었다. 오늘은 가만 숨을 고르고 내목소리에 힘을 빼고 칭찬을 해가며 글쓰기를 돕다보니 아들녀석 손목에서도 긴장감이 줄고 부드럽게 곡선이 그려지고 훨씬 예쁜 모양의 숫자쓰기가 진행됐다. 둘째를 키우면서 남편 뜻대로 낳기를 잘했구나 싶고 탁월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다. 결혼 13년째, 남편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면을 지녔지만 아이들 아빠라는 사실에 귀하게 대하고 아끼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