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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여행
    향기론 2003/11/03 858
      아침엔 잔뜩 날씨가 지푸려 있더니 어느새 맑은 하늘이다. 어거지로 쥐어보낸 우산이 그렇지 않아도 이것저것 손에 들고 어깨에 맨것이 많은 아이에게 괜한 짐이 되어버릴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처럼 한살이라도 덜 먹었을때는 감정이 현실과는 다를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아주 현실적이 되어 버렸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바바리 코트가 멋스럽게 보이긴해도 한편으로 자리에 앉을때나 더워서 잠시 벗을 땐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기피하게 된다. 그래도 가끔 이유없이 가슴이 아리도록 감정이 밀려들때도 있긴 하다. 아픔인지..행복감인지...그 감정의 국적은 알수 없지만 문득 기억속에 묻어나는 특이한 내음을 접했을때나 내가 마음속 깊이 원하던 어떤것을 타인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되었을때 견디기 힘들 만큼의 감정이 물결침을 느낀다. 우연히 나선 여행길에 차장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풍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욕심에 눈이 빠지도록 노려보듯하지만 여행이 끝나는날 주어진 길을 가야함으로 망각해버릴수 밖에 없었던 아련한 기억들... 오랜시간 한 켠에 넣어두고 꺼내보지않던 일기장을 뒤적거리는 마음가짐으로 바쁜 일상속에 억지로 멈추게 한 시간동안 먼 산, 먼 하늘을 바라다 본다. 참 멀리 와 버렸구나! 이제 너무 많이 와 버렸구나! 1권,2권 ,3권 권수로 매겨진 일기장들과 메모장을 미련없이 태워버릴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한 단락이 분명해졌다. 나를 돌아봐서 얻게 될 그 무엇보다 이제 또 다른 기억으로 넘겨질 오늘과 내일에 충실하자. 이미 와 버린 지금의 내 자리... 여행길 주섬주섬 줏어 담은 풍경에 애착을 갖기 보다는 다다른 그 곳에서 후회없이 충실하자. 그렇다고 나이가 들수록 감정이 메말라간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저 추스릴 뿐이다. 없던 지혜도 생기고 없던 여유도 생긴다. 놀랍게도 감정의 시야가 오히려 넓어짐을 느낀다. 내 감정에 빠져 있을땐 그렇지 못했는데 말이다. 인간은 어차피 두렵도록 고독한 존재이다. 존재함으로 고독할수 밖에 없는 인간! 그 고독마저도 질겅질겅 씹으며 즐기는 이들이야 말로 참다운 감정의 진리에 전신을 잠수 시켜본 자들이 아닌가 싶다. 한나절 약간의 변덕스런 날씨에 괜시리 긴 여담을 늘어 놓은 거 아닌가 싶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