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모 (茶母)
다모, 그들의 이야기 - 1. 장성백
나를 향한 너의 칼끝이 떨리는구나.
평생 형제들과 투지를 불태우며 살아왔건만
너와 나의 모진 인연 앞에서는 모두 부질없음을 차마 말할 수 있을까.
너의 애처로운 눈빛에 답하지 못하고 미소만 짓는 나를 알겠느냐.
나의 어린 누이야.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 나를 죽이고자 했소?
- 나는 이미 너를 베었다.
나는 이미 예전에 너를 버리고, 지금껏 살아왔다.
죽을때까지 함께 한다 약속한 너를 이제야 만나
나는 한없이 너를 바라볼 수조차 없게 되었구나.
재희야, 내 안에서는 아직도 어린 누이야...
- 장성백! 모든게 끝났다.
네 앞에 보이는 건 천길 낭떠러지 뿐이다. 네놈은 길이 아닌 길을 달려온게야.
- 길이 아닌 길이라...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재희야, 아버님을 아직 기억하고 있느냐.
나는 이 썩은 세상에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려왔다.
그것은 나의 길, 아버님의 길, 그리고 내 형제들의 길이었다.
- 어리석은 소리 마라. 결국 네 놈이 이른 길은 죽음을 자초하는 벼랑일 뿐이야.
그가 틀렸다.
나는 오늘 이곳에 뼈를 묻겠지만
내가 죽은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내기 위해 걸을 것이다.
나는 지금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 다만... 재희야...
재희야...
얼마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냐.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늘 심장을 저리게 했던 나의 누이야.
처음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너는 이미 좌포청의 다모 채옥으로 살아왔구나.
- 내 칼에 보내지 않으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 재희야... 이번에는 실수하지 마라.
눈 감는 순간까지도 널 바라볼 수 있도록...
-기필코 벨 것이다!
너의 검으로 날 베지 말아라.
너의 손으로 날 보내지 말아라.
이제야 생각나는구나.
오는 길 급해 어릴적 너의 옷고름을 숨겨두지 못하고 왔단다.
부디 오라비를 죽인 죄책감에 너 자신을 가두지 말아다오.
너의 칼과 손은 아직도 순수하니
나는 너에게 죽은것이 아니다.
한가지 더 미안한 것이 있다.
나 대신 널 지켜준 그를 베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날 용서해 다오.
아니, 용서하지 말아라.
아니, 용서하고 다만 나를 잊어다오.
아직도 너를 감싸고 있는 그의 영혼에게
나는 이제야 감사의 말을 전하련다.
내 아직 못다한 말들이 많지만
너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만 가는구나.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평생 헤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
옮긴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