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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 퍼붓던 비기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습니다.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어제치고는 일찍 일어나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눅눅해진 신발장을 열어보았습니다. 장마가 끝난 여름철, 축축한 신발장. 구두를 꺼내들고 현관을 나섭니다.
계단에 걸터앉아 정성을 다해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어느샌가 아래층 꼬마가 나타나서는 "안녕"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효진아" 아래층 꼬마 이름이 효진입니다. 이제 유치원에 막 들어간 아이지요. 꼬마가 뜬금없는 말을 합니다.
"아저씨 집은 2층이고 우리집은 1층이야. 맞지?"
나는 구두만 바라본채 성의없이 대답합니다
"아닌데. 아저씨 집이 1층이고 효진이네 집은 지하 1층인데."
제가 사는 곳은 조그만 빌라, 아니 빌라라고 하기엔 너무도 허름한... 연립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네요.
"아냐! 우리집이 1층이야"
꼬마가 우기기 시작합니다. 나는
"아니라니까. 아저씨 집이 1층이라니까. 아저씨네 문앞에
써 있는 저숫자 안보여? 101이라고 써있잖아. 아저씨 집이
1층이야. 효진이 바보구나?"
라고 대꾸해 주었지요. 그런데 응당 뒤따라야 할 꼬마의 대꾸가 들리지 않습니다. 닦던 구두를 옆에 내려놓고, 살며시 꼬마를 바라보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꼬마의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꼬마네는 지하 1층에서 다섯식구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8살배기 언니, 효진이 그리고 갓 태어난 남동생까지... 사실 다섯 식구가 살기엔 너무나도 좁은 환경이지요 '아차! 내가 꼬마에게 무슨짓을 한거지?' 그제서야 눈치를 챘습니다. 미련곰탱이같은 놈! 사태는 수습하기에 이미 늦은 듯 합니다. 꼬마는 울먹이기 시작합니다.
"울엄마가 아저씨집이 2층이고 우리집이 1층이라고... 엄마! 아앙~~"
꼬마가 울기시작합니다. 아! 눈앞이 아득해옵니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순간 완전범죄를 저질러야 한다는 무서운 생각이... 일단 꼬마를 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문을 얼른 닫습니다. 그러고는 꼬마의 입을 구두닦던 그 더러운 손으로 막아버립니다.
"아저씨가 장난한거야. 효진이집이 1층이고 아저씨 집이 2층이
야. 울지마 효진아"
그러나 소용없습니다. 꼬마는 더 크게 울어 제낍니다. 아! 하늘이 노래집니다. 어쩌지?
"까꿍! 아저씨 봐봐. 어때? 웃기지?"
배트맨처럼 손을 거꾸로 뒤집어 눈에다 대고는 재롱을 떨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꼬마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하늘이 무너집니다. 어쩌나? 그렇다면...
"효진아 아저씨랑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아저씨가 아이스크
림 사줄게" "아이스크림?"
울먹이던 꼬마의 눈이 반짝입니다. 으하하하! 꼬마가 울음을 멈춥니다. 그래도 여기서 고삐를 늦추면 언제 또 울어버릴지 모릅니다. 꼬마의 손을 잡고는 동네 슈퍼로 향합니다. 나는 언제나처럼 돼지바를 집어들었습니다. 꼬마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옥동자를 집어듭니다. 그날따라 돼지바의 맛이 씁니다.
"맛있어?"
"응"
짧은 대꾸,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마는 아이스크림에만 열중합니다. 집앞에 다다랐을 때 꼬마가 먼저 입을 엽니다.
"아저씨! 우리집이 1층이야. 그치?"
꼬마는 다시 우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마음에 더 이상의 상처를 주어선 안됩니다.
"그럼! 효진이네 집이 1층이고 아저씨 집은 2층이야"
꼬마가 방긋 웃네요. 나도 따라서 싱긋 웃어보입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꼬마와 놀아주어야 했습니다.
새벽같이 일터로 향하는 꼬마의 아빠, 그 젊은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조그마한 용달차를 끌고 새벽을 달립니다. 큰 꿈을 가득 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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