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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가 그린 첼로 한장(퍼옴)
    낙서금지 2003/07/16 943
      가끔은 제게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문득 제 나이를 헤아리고 스스로가 놀랄 때... 어른들이 들으시면 꾸짖으실 게 분명하지만 서른 중반에 와 있는 지금. 삶에서 너무도 긴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어설프고 낯설며 그 어떤 의무나 책임으로부터 무작정 도망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새벽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오늘 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한창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첼리스트가 있었답니다. 첼리스트에겐 미술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피카소였습니다. 하루는 첼리스트가 피카소에게 찾아가 이런 부탁을 했더랍니다. 자신이 목숨처럼 아끼는 첼로를 그려달고고 말이죠 그런 부탁이 있은 이후로 피카소와 여러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피카소는 한번도 첼리스트에게 첼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답니다. 워낙 유명한 피카소 였기에 속으론 서운 했지만 피카소가 자신의 부탁을 잊어버렸다고 스스로 체념하고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피카소가 첼리스트를 찾았습니다. 피카소가 그 앞에 꺼낸 것은 바로 10년 전 그가 부탁했던 첼로 그림이었습니다. "자네 부탁을 듣고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난 줄곧 자네의 첼로를 그리기 위해 연습했다네" 후에 첼리스트는(누군지 이름은 잊어버려 유감이지만) 학생들 앞에서 연습의 중요성에 대해 말할 때 쯤이면 꼭 피카소가 그린 자신의 첼로에 대해 얘기하곤 한답니다. 삶을 두고 어떤 이들은 한편의 연극과 같다 하고 좀더 공격적으로 사는 이들은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밀림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은 어쩌면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하얀 연습장을 채워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구요 그 연습장에는 실패로 인한 깊은 좌절과 그리고 눈물도 묻어 있을 것이고 뜻밖의 성공이 가지고 온 기쁨과 열정도 고스란히 들어 있을 겁니다. 그래서 가끔은 지난 연습장을 뒤적이며, 이렇게 생각하겠죠 그런 실패와 좌절과 눈물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그렇게 모질게 다듬어지고 깍여서 오늘의 우리로 이렇게 서 있다고 말입니다. 피카소가 첼로 그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10년 동안 매일 수 십장의 첼로를 그리고 또 그렸듯 우리의 삶 역시, 무엇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끝없이 실패하고 좌절할 것이 분명하지만, 마지막까지 도전이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면 분명 우리 앞에 삶은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힘든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혹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또 나 자신으로 인해서..... 그런 힘든 시절에 피카소의 첼로 그림을 떠올리면서 하얀 연습장을 한장을 또 채워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