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 첼로 협주곡 B단조 제1악장(드보르작)
    음악감상 2003/07/14 899
     
    
    ♬ 임종을 다섯 달 앞둔 브람스는 드보르작의 이 첼로 협주곡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첼로 협주곡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니 참으로 놀랍군 !
    좀더 일찍 들었더라면 나도 이런 걸 써 보는 건데......"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은 정확히 말해서 2곡 있다. 그 하나는 
    1863년(24세)에 씌어진 A장조의 곡인데, 이것은 
    오키스트레이션이 완성되어 있지 않고 작품번호도 없다. 다른 하나가 
    그보다 30년 후인 1895년에 완성된 B단조의 이 곡이다.
    
    드보르작은 협주곡으로서 이 첼로 협주곡 외에도 바이올린과 
    피아노 협주곡을 각각 1곡씩 썼는데, 그 중에서 이 첼로 
    협주곡 B단조가 단연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고금의 첼로 협주곡을 
    통틀어서 최고 걸작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드보르작은 오페라나 표제음악보다도 교향곡이나 협주곡 
    분야에서 훨씬 뛰어난 작품을 남겼는데, 선배인 
    스메타나가 리스트의 본을 따라 교향시로 접근해간 것과는 
    차이코프스키나 브람스의 조형성에 더욱 끌렷다. 그와 같은 
    경향은 만년에 이를수록 더욱 현저해져 갔다.
    
    드보르작은 다른 작곡가에 비해 보다 본능적이고 감성적인데, 
    이 첼로 협주곡에서는 그 구성적 기법이나 관현악법 에 있어서 
    견실한 고전적 조형을 보여주며 그것이 타고난 선율적 창의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 에 들어서 재미있고 
    항상 들어도 싫증이 안 나며, 마치 교향곡을 듣는 듯한 
    풍운감을 안겨준다.
    
    이 곡은 그가 미국에 머물던 때의 소산인데, 아메리카 
    민속음악인 인디언의 민요나 흑인영가에 대한 깊은 관심을 
    이야기해 준다. 5음음계의 선율법 등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그 경향은 단지 이국 취미라고 말해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작품의 본질적 성격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의도는 
    그가 평생을 두고 애정을 쏟았던 보헤 미아 민족음악과 
    긴밀히 융합되어 있다. 이 완전무결한 융합은 한편에서 볼 때는 
    아메리카 민족음악과 보헤미아 민족음악이 선율이나 리듬에 
    있어서 비슷하다는 데 기인되며, 드보르작 자신을 놓고 볼 때는 
    그가 이 양자에서 있 는 그대로를 따오지 않았던 데 기인된다.
    
    슬라브적인 정열과 아메리카 민요가 가지는 애수어린 서정성을 
    아울러 갖춘 이 곡은 어려운 연주 기교를 구사함으 로써 
    비르투오소적 효과도 풍부하게 내고 있다. 그러나 고전 협주곡처럼 
    독주부와 오케스트라를 대립적으로 처리 하지 않고, 브람스의 
    협주곡처럼 오케스트라에 폭과 두께를 더하여 전체적으로 
    심포닉한 울림을 살려내고 있다. 피 아노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고전적 2관편성의 테두리를 엄격히 
    지켰던 드보르작이, 이 곡에서는 튜바 나 트롬본 따위의 저음 
    금관악기를 써서 완전화음의 울림을 한층 부드럽고 충실하게 했다.
    
    낭만파 작곡가 중에서도 라프, 랄로, A. 루빈시타인, 생상스, 
    차이코프스키 등이 첼로를 위한 협주적 작품을 썼다. 그러나 
    드보르작의 이 곡은 기술이나 내용의 풍부성에 있어서 
    그 모든 것을 능가하며 단연 압도하고 있다. 이제 이 곡이 
    작곡되게 된 경과를 간추려 본다. 일련의 작품을 통해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드보르작은 1892년 (51세)에 
    미국으로 초청되어 자네트 저버 부인이 설립한 뉴욕 
    국민음악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3년 동안 그 곳에 
    머물렀다. 그 기간에 《신세계 교향곡》(작품 95), 
    현악 4중주곡 《아메리카》(작품 96)와 같은 명작이 
    창작되었는데 이 첼로 협주곡도 그 기간의 결실이다. 
    그 곳 임기를 마치고 프라하 음악원장으로서 귀국하기 
    직전인 1894 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에 걸쳐 작곡되었다.
    
    이 곡은 귀국 후에 탈고했는데 동향인인 첼리스트 하누시 
    비한에게 헌정되었다. 드보르작은 도미하기 전에 이 친구와 
    함께 보헤미아 지방을 연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이 곡을 쓰게 된 간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드보르작은
     이 곡을 일단 완성한 뒤에도 비한의 충고를 받아들여 
     끝악장의 독주부를 약간 수정했다. 그리고 초연 한 뒤에도 
     마지막 60마디를 새로 썼는데, 미국 오페레타 작곡가 
     빅터 허버트의 첼로 협주곡 제2번을 듣고 그 고음 역의 
     효과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연은 1896년 3월 런던 필하모니 협회 음악회에서 행해져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때 독주는 영국의 유명한 첼리스트 
    레오 스턴이 맡았고, 오케스트라 지휘는 드보르작 자신이 했다.
    
    
    제1악장 알레그로, 4/4박자
       소나타 형식. 서주 없이 곧 제1주제가 저음 현에 실려 
       클라리넷에 의해 연주된다. 
    
    이 주제는 블루스에 쓰인 니그로 음악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제1주제의 변화구들이 연주되다가 호른에 5음음계의 
    아름다운 제2주제가 나타난 다. 다시 총주의 힘찬 
    악상으로 변하다가 독주 첼로가 낭랑하게 제1주제를 켠다. 
    그것을 카덴짜 스타일로 변형시키 다가 이어서 제2주제가 
    역시 독주 첼로에 의해 연주된다. 현과 목관이 부드럽게 
    발전하면 독주 첼로는 아르페지오 로 바뀌고 더욱 
    다채롭게 변화 고조되면서 제시부가 끝난다.
    
    전개부는 제1주제의 변형으로 시작되는데 이어서 현과 
    플루트를 동반하면서 2배로 늘어진 제1주제가 독주 
    첼로에 의해 전혀 다른 표정으로 노래되는 대목은 
    정말 압권이다. 재현부는 오케스트라의 총주에 의한 
    제2주제의 재현으 로 시작되는데, 독주 첼로가 
    즉시 이를 이어받는다. 이윽고 오케스트라 총주에 
    제1주제가 힘차게 나타나고 그것을 이어받은 독주 
    첼로가 힘있게 펼친 뒤에 총주로써 웅장하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