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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막 유전자 치료 경험담 - 엘리스 코로나 (여성) 22세
    최정남 2014-08-04 3,629
     
    제목:  망막 유전자 치료 경험담 - 엘리스 코로나 (여성) 22세
    글쓴이:  회장 날짜: 2014/08/04 13:12:52 조회: 443    
     
    미국 실명퇴치 재단 홈페이지에 최근 유전자 치료를 받은 환자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앞으로도 알피는 변이유전자 별로 유전자 치료 임상들이 진행 중이거나 준비 예정이어서 환우 여러분들의 참고 있으시길 바랍니다.

    이번 여름켐프에서는 서울대 병원 안과 알피 유전자 치료 관련 연구원으로부터 자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됩니다. 환우 여러분들의 많은 참석 기대합니다.


    <망막 유전자 치료 경험담 - 엘리스 코로나 (여성) 22세>

    In Their Own Words:
    Allison Corona
    Age, 22
    New York City


    1) 질환에 대하여 : 레베르 선천성 흑색종 (LCA) 밍믹 질환은 조기 발병형 알피 질환의 한 유형으로 어린 시절부터 상당한 시각 손상을 경험한다. 이번 앨리슨의 경우도 RPE-65 변이 유전자가 원인으로, 그녀는 최근 미국 실명퇴치 재단이 진행하는 임상 시험 3차에 참여한 바 있다. 필라델피아 아동 병원에서 유전자 치료를 받은 그녀는 시각의 일부가 회복되고 있는 중이며 그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2) 진단과 시각에 대하여 : 나는 3살 때 관련 질환을 공식적으로 진단 받았다. 어린 시절 일찍부터 특수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2학년 때에는 지방의 일반 학교로 옮겼으며 그곳에서는 일대일 도우미 보조를 받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은 더욱 힘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떠났고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팡이를 사용했기 때문에 나는 시각 장애 소녀로서 알려졌다.

    고등학교 시절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는데 지팡이 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이기에 지팡이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시각 장애자가 아닌 앨리슨으로 알아보길 원했다.

    내가 대학교를 다녔을 때는 또다시 지팡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학 켐퍼스가 아주 크고 넓어서 돌아다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교내 활동을 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구내 카페는 매우 어두었고 그래서 가기가 두려웠다. 수업이 끝나면 교내에 머물러 있거나 클럽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길을 잃어버릴 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교를 다니는 일을 그만 두었다.

    3) 유전자 치료에 대하여 : 나는 20살이 되어서 이번이 마지막인 필라델피아 아동 병원의 임상 시험에 참가하게 되었다. 최초의 임상은 2008년도에 시작한 바 있었다. 그리고 나는 10일 간에 걸쳐서 양쪽 눈을 동시에 치료 받게 된 최초의 환자가 되었다.

    (그동안의 1,2차임상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해서 한쪽 눈만 치료하여 왔음)

    처음 수술 받았을 때 며칠은 고생스러웠다. 마취 때문에 힘들었고 치료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안구에 공기를 주입하였는데 이에 적응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아침 가족들과 함께 미사에 참석하였는 데, 비록 물체가 약간 찌그러져 보였지만, 나는 사람들을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누가 남자고 여자인지 그리고 무슨 옷을 입었는 지 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과거에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 안구를 치료 받기 위해 병원에 다시 왔을 때, 나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 이쪽 눈처럼 다른 쪽 눈으로도 보길 원해요.”

    4) 미래의 대하여 : 나는 지난 20년을 기능적인 시력조차 없이 살아왔지만, 최근에서야 겨우 1년 동안 양쪽 눈으로 시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 그것이 어떤 형태이었는지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 비록 아직은 완벽하게 볼 수 없지만 밤에 혼자서 다니는 것이 무섭지 않다. 지금 나는 차도 불빛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두려움이 없어졌다. 과거에는 매우 긴장하였고 쇼핑 쎈타에서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걷게 되면 매우 무서웠다. 왜냐하면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사회 활동에 대한 공부도 시작하였고 지팡이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아버지를 식당에 모시고 갈 정도가 되었고, 그가 안경을 가져오지 않았을 때에는 그를 위해 식당 매뉴판도 읽어주게 되었다.

    유전자 치료 기술은 이제 인생을 바꿀 정도의 기적이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하여 자긍심을 회복하였으며 훨씬 이전보다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 세계를 여행 다니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