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회 - 유전자 가위 기술(CRISPR) 이란 무엇인가 ? | |||||
최정남 | 2016-05-29 | 5,347 | |||
최근 생명공학자들은 유전자를 자르는 가위인 “크리스퍼 (CRISPR)를 가히 바이오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지 불과 3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과학자들이 이토록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나 크리스퍼는 다양한 변이 유전자들로 발병하는 알피 질환자들에게는 어쩌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치료 기술의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1) 유전자 편집의 역사 <출처 - 동아 사이언스 인용> 유전자 조작이 처음 시작된 것이 1970년대이다. 과학자들이 DNA의 특정 서열을 인지하여 자르고 붙일 수 있는 “제한효소”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한 효소를 사용하는 유전자 조작 기술은 한계가 많았다. 인식할 수 있는 유전자 서열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DNA가 36억 개가 넘는데 제한 효소를 사용하면 약 7만개가 넘는 다른 DNA까지 잘라버리는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밀한 위치를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자들은 제한 효소를 대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DNA에 결합하는 단백질인 징크핑거 (Zinc Finger) 와 탈렌 (TALEN) 을 활용한 유전자 가위가 연구되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인식 서열이 짧아서 수 천개가 넘는 DNA 유전자 가위를 새로 이식하여야 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 된다. 2) 크리스퍼의 발견 이러한 상황을 종식시킨 새롭고 강력한 유전자 가위가 2012년에 개발된 크리스퍼 (CRISPR)이다. 크리스퍼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87년이다. 일본 오사카대 소우 이시노 박사팀은 대장균의 단백질 유전자를 연구하던 중 특이한 서열을 발견했다. 이 서열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회문구조(palindrome)가 반복되고 있었다. 회문구조는 DNA에서 염기서열이 역순으로 배치되는 구조다. 당시에는 단순히 단백질의 서열을 알아내는 걸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이 서열은 한동안 잊혀졌다. 정체불명의 서열은 1990년대에 들어서 다시한번 주목받았다. 1994년 최초의 세균 유전체지도가 나온 뒤, 여러 세균의 유전체 서열이 밝혀졌다. 이를 살펴보던 과학자들은 한 개의 공통적인 서열을 발견했다. 앞서 발견된 회문구조였다. 이 구조 사이에 21개 염기서열이 끼어있다는 것도 찾아냈다. 21개 서열은 세균의 다른 DNA에서 발견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서열이었다. 그때까지도 회문구조와 21개의 염기서열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순히 '주기적으로 간격을 띠고 분포하는 짧은 회문구조 반복서열(CRISPR, Clustered Regular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 21개 서열 중에 어떤 것은 종의 구분 없이 여러 가지 세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3) 요구르트 회사 연구원들의 놀라운 발견 21개 서열의 정체를 밝혀낸 것은 덴마크의 요구르트 회사인 '다니스코' 연구자들이다. 로돌프 바랭고 박사와 필리피 호바스 박사는 세균에서 '적응면역'을 최초로 발견해 2007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요구르트 발효에 사용되는 대량의 유산균을 배양 할 때 세균 감염을 막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유산균을 죽이는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애써 키운 유산균이 떼죽음을 당할 수 있다. 다니스코의 연구자들은 이렇게 떼죽음 당한 유산균 사이에서 살아남은 일부 유산균에 궁금증을 품었다. 이 유산균이 다른 유산균을 몰살시킨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게 아니냐 는 것이다. 연구결과 정말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나면 항체가 생겨 이후에 그 바이러스에 대해 내성을 갖는 것처럼, 비슷한 적응면역이 박테리아에서도 존재한 것이다. 다니스코 연구팀은 이어진 연구에서 정체를 알 수 없던 크리스퍼가 적응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회문구조 사이 21개 서열에서 바이러스의 DNA가 발견된 것이다. 이 유전자를 지웠더니 내성이 사라졌다. 이것을 토대로 연구팀은 ①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바이러스의 DNA를 잘게 잘라 유산균의 유전자에 붙여 넣어서 '기억'하고 ②나중에 다시 침입하면 이 전에 DNA 형태로 기억해둔 정보를 활용해 면역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흥미로운 결과지만, 이때까지도 단순히 고등동물에만 존재하던 적응면역이 세균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데 불과했다. 4) 미국 버클리 대학 다우드나 교수 유전자 가위 개발하다. 크리스퍼가 유전자 가위로 활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미국 버클리대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와 독일 하노버대 엠마뉴엘 카펜디어 교수가 이끄는 공동연구팀이다. 이들은 크리스퍼 적응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Cas9' 단백질을 세균에서 찾아냈다고 '사이언스'에 2012년 발표했다. 연구팀은 세균에 기억된 바이러스 DNA(21개 염기)가 RNA로 전사되고, 이 RNA와 Cas9이 결합해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의 DNA를 자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군대에 비유하면 21개 염기는 다른 유전자를 찾아내는 정찰병이고, Cas9은 직접 적을 물리치는 전투병인 셈이다. 더구나 Cas9에 결합하는 RNA를 바꾸면,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아닌 다른 유전자 서열도 자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새로운 유전자 가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크리스퍼를 활용한 유전자 가위는 기존 기술보다 훨씬 간편하다. 징크 핑거나 탈렌 같은 인공 유전자 가위는 단백질이 정찰병 역할을 했다. 그러나 크리스퍼는 단백질보다 훨씬 작은 RNA가 그 역할을 한다. DNA 100개만 바꾸면 전혀 다른 서열 특이성을 가지는 유전자 가위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5) 모든 생물의 유전체를 수정할 수 있게 된 인간 크리스퍼의 발견은 유전자 수정 붐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2013년 12월 동물 세포에서 유전자 수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곧바로 실험 동물의 대표격인 마우스의 수정란에 유전자를 삽입하는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기존에도 마우스에서는 유전자 발현을 막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집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크리스퍼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존 유전자 조작 마우스는 일단 배아줄기세포 수준에서 유전자 조작을 하고, 조작된 배아줄기세포를 배반포에 주입한 뒤 이식하고 또 검증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반면 크리스퍼를 이용하면 수정란에 Cas9과 RNA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간편하게 새로운 형질의 쥐를 만들 수 있다. 마우스의 성공 이후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열대어(어류), 쥐(포유류), 초파리(곤충) 등의 대표적인 실험동물은 물론이고 소, 돼지, 밀, 쌀 등 동 식물의 유전자 수정도 성공했다. 모두 이전에는 줄기 세포가 없어 유전자 조작을 할 수 없던 생물들이다. 인간이 드디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물의 유전체 정보를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6) 인간이 크리스퍼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1일 중국 중산대 황쥔주 박사팀이 크리스퍼를 활용한 인간 수정란 유전체 편집 결과를 발표했다. 효율이 낮아 유의미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크리스퍼를 인간에 적용한 첫 번째 결과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인간이 드디어 자신의 유전정보를 스스로 편집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일까. 과연 인간은 이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장은 SF영화에 나오는 괴물을 실험실에서 만들어낼 수는 없다. 아직까지는 인간을 비롯한 고등생물 유전체를 수정할 능력이 없다. 생명체를 자동차와 같은 복잡한 기계에 비유하면 지금은 자동차를 구성하는 복잡한 부품 일부의 기능을 알고, 고장이 났을 때 교체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크리스퍼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기능을 아는 유전체 내의 유전자 몇 개의 기능을 없애고 잘못된 부분을 수선하는 정도지만 이마저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령 유전자의 기능을 없애는 것에 비해서 새로운 유전자를 집어넣는 것은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다.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시간이 꽤 남아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인간과 크리스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인간이 처음으로 가진 무서운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7) 세상을 수리하는 크리스퍼 생명과학자에게 크리스퍼는, 기계공학자에게 세상의 모든 기계를 뚝딱 고칠 수 있는 ‘절대 망치’와 비슷한 의미다. 그럼에도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을 환우들을 위해 크리스퍼가 활용되고 있는 몇 가지 예를 소개한다. 가) 멸종 동물의 복원 수천 년 전에 사라진 매머드 같은 멸종 생물을 복원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이전에도 시베리아의 빙하 속에서 발견된 매머드 세포에서 DNA를 채취해 코끼리 난자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매머드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신통치 않았다. 오랜 세월동안 DNA가 손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염기서열을 읽어 현생 코끼리와 유전적 차이는 알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의 조지 처치 교수팀은 매머드의 유전적 특징(극지에서 생존할 수 있는 수북한 털 등)을 현생 코끼리에 붙여 넣어 매머드를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끼리의 체세포로부터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만들고, 매머드의 유전자를 집어넣는 방식이다. 나) 새로운 유전자 조작 식물 GMO 유전자조작식물(GMO)의 유해성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현재 만들고 있는 GMO 대부분은 식물 세균인 ‘아그로박테리움’을 활용해 외부 유전자를 식물에 인위적으로 삽입한다. 이 과정에서 수백, 수천 개가 넘는 외부 유전자가 삽입돼 안전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최근 특정서열(열 개 내외)을 목표로 하는 RNA와 Cas9을 식물에 넣는 방법으로 식물 개량에 성공했다. 이 방법은 GMO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다) 유전자 조작 마우스 만들기 크리스퍼 등장 이전에 유전자 조작 마우스를 만드려면 1년 정도가 걸렸다. 이마저도 실험 과정에 어떤 실패도 없었을 때다. 크리스퍼로 유전자 조작 마우스를 만들면 기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라) 에이즈와 암을 정복하는 체외치료 환자의 몸에서 면역세포를 채취한 뒤 이 면역세포의 유전자를 수정하고 다시 주사하는 방식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가령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면역세포인 CD4T를 공격하는데, 이때 HIV가 침입하는 통로인 CCR5라는 단백질에 유전자 가위 (징크 핑거)로 돌연변이를 만들면 HIV 내성이 생긴다. 이 치료법은 현재 임상 2단계가 진행 중이다. 크리스퍼는 더 정교하게 CCR5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특정한 암세포를 인식하도록 면역세포의 유전체를 수정한 뒤 다시 주입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CAR-T’라는 치료법도 현재 개발되고 있다 마) 알피 치료를 위한 크리스퍼 기술 개발 마지막으로 알피 치료를 위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알피는 약 80 종류에 의한 변이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52개의 유전자 변이가 규명되어 있다. 따라서 이미 알려진 변이유전자들의 RNA를 Cas-9단백질과 결합시키면, 알피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물론 알피에는 열성, 우성, 모계로 유전되는 X-link 형 유전자들이 있다. 특히 우성의 경우는 유전자 한쌍 중에 한 쪽 만이 변이되어도 알피가 발병되는 유전형이지만, 나머지 한쪽은 정상적인 유전자로 존재한다. 따라서 변이된 한 쪽만을 제거해도 세포의 기능에는 큰 문제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우성과 X-link 형 알피 부터 치료 연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다음 편에서 계속 - ** 2회- 유전자 가위 기술로 알피 동물시험 치료 성공-미국 세다스 시나이 병원 연구팀 -이상- |